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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약]

11화 여기자의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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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수백만 관중이 경기장에 몰려들어 팀과 프로 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인기 스포츠, 야구. 굴지의 대기업들은 야구에 대중의 관심이 매우 높은 걸 활용해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각 팀과 선수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퍼붓는다.

 

이렇듯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고 막대한 자금이 오가는 야구판이니, 어떻게든 인지도를 올려서 판매 부수를 올려야 하는 언론사들이 달려들 수밖에 없다. 그들은  수많은 기자들을 고용하여 야구팀과 선수들을 취재하고, ‘소스’를 찾아내는 즉시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그러나 기자들은 사실을 정확하게 보도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보다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내는 데 사활을 걸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어서 자기네 신문을 구독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실제 사건을 잔뜩 과장하기도 하고, 실체가 없는 걸 멋대로 지어내기도 한다. 심지어 선수들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직업 정신이 부실하다는 식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선수들은 이런 기자들을 상대하길 꺼렸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취재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기자들에게 밉보여서 신문에 대문짝만한 기사를 실어서 자신을 비난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들을 극도로 싫어하는 선수조차도 호감을표하는 기자가 딱 한 명 있었다. 선수들은 그 기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입가에 쓴 미소를 지으며 이런 말을 하곤 했다.

 

“그 덜렁이 미녀 기자, 나한테 인터뷰를 요청했으면 좋겠군. 그럼 성심껏 응할 텐데!”

 

‘덜렁이 미녀 기자’는 바로 ‘동방신보’ 소속의 신참 여기자 백지은이다. 여성 기자가 여럿 있었지만, 그녀는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존재였다. 이는 그녀가 남들과 차별화된 특징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찰랑거리는 검고 긴 생머리, 붉고 팔 없는 스웨터,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에 오똑한 코, 작고 불그스름한 입술, 그리고 윤곽이 살짝 드러나는 가슴이 특징인 미녀였다. 목줄을 단 카메라를 항상 목에 메고 돌아다녔고, 수첩과 펜을 항상 들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호감을 품은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그녀의 성품이었다. 그녀는 무척 긍정적이면서도 발랄한 성격으로,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항상 밝게 웃으면서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눈 이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그 아가씨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솟아나는 것 같아요. 온종일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일 거예요.”

 

한편, 백지은은 덜렁이 기자로도 유명했다.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건 예사였고, 인터뷰 후 수첩 등 물건을 놓고 나갔다가 나중에 허겁지겁 돌아오곤 했다. 스코어를 헷갈려서 실제로 진 팀이 이기고 이긴 팀이 졌다고 했다가 나중에 수습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인터뷰할 상대를 헷갈린 적도 있었다. 한 번은 나주 피어스 소속의 김이수 선수와 인터뷰가 잡혀 있었는데, 그만 이름을 헷갈려서 같은 팀에서 뛰는 김인수 선수를 찾아갔다. 김이수 선수는 지은이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돌아올 때까지 2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다.

 

이렇듯 실수가 잦아서 상사로부터 꾸중을 많이 듣곤 했지만, 오히려 이 점도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앞서 그녀 때문에 2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던 김이수 선수는 지은이 자기 앞에서 연신 머리를 숙이며 사죄하자 방긋 웃으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지은 씨같은 매력적인 여인이라면 2시간이 아니라 20시간도 기다릴 수 있는걸요! 지은 씨의 인간적인 모습을 알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사람들이 이렇듯 실수를 연이어 저지르는 그녀를 좋게 본 건 깔끔한 외모를 가진 여인이 덤벙거리는 게 신선했고, 실수를 저지른 뒤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 역시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또한, 지은은 대다수 기자들과는 달리 사실을 왜곡하거나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려고 집착하지 않았다. 그저 사실을 명료하게 보도하고, 선수들의 사생활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자연히 선수들은 그녀를 대하는 걸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고, 다른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면서도 그녀만큼은 받아들였다. 덕분에 취재거리가 없어서 고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직장에서 나름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딱 한 선수만은 끝까지 그녀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으니, 그는 바로 강릉 레빗스의 유격수 박현석이었다. 그는 6년만에 1군에 돌아와서 맹활약하면서도 단 한 번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강릉 레빗스의 승승장구를 견인한 그와 인터뷰하길 원했지만, 그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현석은 절대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기자들이 먹이감을 뜯어먹으려고 사방을 기웃거리는 하이에나 무리라고 여겼다.

 

“그딴 놈들과 만났다가 뜯겨먹힐 바에 만나지 않는 게 나아! 마음껏 떠들어보라고 해! 난 그놈들과 상종도 하지 않을 테니까!”

 

지은은 그런 현석에게 관심을 품고 그에게 접근했다. 사실 그녀는 ‘덜렁이 기자’ 소리 듣는 게 싫었고, 어떻게든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아무도 취재하지 못하게 하는 박현석 선수와 인터뷰를 따낸다면, 다들 나를 달리 보겠지. 까탈스러웠던 선수들도 결국 인터뷰를 따냈으니, 박현석 선수도 그럴 거야.’

 

그러나 그녀의 예상은 빗나갔다.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해 봤지만, 현석은 퉁명스러운 어투로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전 어떤 기자와도 인터뷰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그녀는 이후에도 인터뷰 요청을 여러 차례 했지만, 현석은 단호히 거부하다가 나중엔 아예 수신차단까지 걸어버렸다. 그동안 인터뷰를 어렵지 않게 따냈던 그녀로선 실로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은은 이 정도로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현석이 기자들을 극도로 꺼려한다는 걸 알게 되자,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일련의 조치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기자가 무작정 헐뜯기만 한다는 선입견을 버리게 해야겠어. 좋은 말만 계속 써준다면, 결국엔 인터뷰에 응해주겠지.’

 

지은은 “대학 야구의 전설이 돌아왔다”, “최강의 유격수의 부활” 등 그에게 긍정적인 제목을 단 기사를 연이어 출간했다. 그녀는 이 기사에서 구체적인 수치까지 거론해가며 현석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또한 현석의 동료들과 접촉하여 그에 관한 미담을 수집했다. 동료들은 현석이 훈련장에 제일 먼저 나와서 가장 늦게 나간다고 알렸다.

 

그녀는 즉시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새벽 이슬을 맞으며 훈련장에 입소하여 노을이 완전히 질 무렵 귀가하는, 모두의 모범이 될 만한 선수”라고 칭찬했다. 현석의 절친한 동료 이대은은 현석에게 이 기사를 보여주며, 지은과 인터뷰하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백지은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적인 기자일세. 호의적인 기사를 연이어 쓴 걸 보니 자네에게 호감을 품은 것 같은데, 한 번 만나서 인터뷰하는 게 어떤가?”

 

현석은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그 여자는 나와 인터뷰하려고 수작을 거는 것뿐이지, 딱히 나를 좋게 봐서 그러는 게 아니야. 내가 여기에 속아서 인터뷰에 응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싹 바꾸고 마음껏 물어뜯을 걸?”

 

“이보게, 현석! 자네 속고만 살았나? 지은 씨는 그럴 여자가 아니라니까? 명백히 호의를 표한 분을 야멸차게 대하지 말고 인터뷰에 응하게.”

 

대은이 답답해 하며 재차 권했지만, 현석은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인터뷰는 자네나 실컷 하게! 난 절대로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을 거야. 그럴 시간에 방망이를 더 휘두르는 게 나아!”

 

이렇듯 호의적인 기사를 연이어 썼는데도 현석이 넘어가지 않자, 지은은 그의 이웃 주민과 면담하여 그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그러던 중 한 노인으로부터 현석이 늙고 병든 어머니를 정성껏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그 분 연세가 올해로 여든인가 할 텐데, 몸이 몹시 편치 않아서 온종일 누워 지내셔야 한다더군. 현석 군은 힘든 와중에도 어머님을 정성껏 돌봤지.

 

하루는 내가 양로원에 보내는 게 어떠냐고 물었지. 가뜩이나 야구 경기를 뛰느라 힘들 텐데 어머니를 봉양하는 것까지 하면 몸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그랬더니 그 친구가 뭐라 했는지 알겠나?

 

‘저는 어머니를 모시는 것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양로원에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라고 하더군! 이제껏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그런 효자는 처음이야. 자식 놈들이 그 친구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지은은 이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다! 이 사실을 보도하면 모두 현석 선수를 칭송하겠지. 그럼 현석 선수는 내게 고마움을 느끼고 인터뷰에 응할 거야.’

 

그녀는 즉시 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는 현석의 이야기를 기사로 실어 대중에 공개했다. 예상대로 수많은 이들이 현석에게 갈채를 보냈고, 현석을 돕고 싶다며 후원금을 보내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후훗! 잘 되고 있네. 이제 현석 선수가 그동안 미안했다며 인터뷰에 응하겠지…….’

 

그러나 얼마 후, 그녀는 곤경에 처한다. 기사를 본 현석이 극도로 분노하여 그녀가 일하는 동방신보에 항의 전화를 건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제 개인사를 보도한 겁니까? 제 허락도 없이 이런 짓을 하다니요? 당장 기사 내리세요. 안 그러면 고소하겠습니다.”

 

동방신보 사장이 쩔쩔 매며 말했다.

 

“그 기사 덕분에 현석 선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후원금도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부디 좋게 생각하시는 게…….”

 

그러나 현석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후원금은 전부 돌려줬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 읽어보니 어머니를 죽을 날이 머지 않은 병자 취급 하더군요. 전 어머님이 그딴 취급을 받길 원하지 않아요. 당장 기사 내리세요. 당장!”

 

동방신보는 한창 절정의 기량을 뽐내며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그와 정면 대결하면 큰 손실을 보리라 여기고, 어쩔 수 없이 기사를 내리기로 했다. 그리고 지은은 허락도 없이 사생활을 파헤쳤다는 이유로 감봉 및 경고 조치를 받았다.

 

지은은 이 일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 좋은 의도로 기사를 썼건만 돌아오는 건 이랬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녀는 낙담한 나머지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고 우울하게 지냈다.

 

‘이런 취급 받느니 차라리 그만 둘까? 기자라는 이유로 막무가내로 비난받고 싶지 않은데…….’

 

며칠 후 기운을 차린 지은은 방향을 달리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는 현석이 이렇게까지 인터뷰하길 거부하는 것에 강한 의혹을 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아. 기자를 대하는 걸 싫어한다고 해도, 자기를 좋게 써주는 것까지 달가워하지 않고, 급기야 고소를 운운하다니……. 분명 뭔가가 있어…….’

 

그녀는 현석이 취재를 극구 거부하는 것에 말 못할 비밀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이 점을 파헤치기로 했다. 우선 그동안 현석이 거둔 성적을 분석했다. 그의 호감을 사기 위해 긍정적인 기사를 쓸 때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다시 살펴보니 이상한 점을 느꼈다.

 

‘기록을 찬찬히 뜯어보니, 뭔가 마음에 걸려. 데뷔 후 6년간 1군과 2군을 들락날락 하면서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는데, 올해는 안타를 못치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잖아? 뭔가 이상해…….’

 

지은은 현석의 도루 숫자가 획기적으로 늘어난 점도 수상하게 여겼다. 그녀의 조사에 따르면, 현석은 잘 나가던 대학 야구 시절에는 도루 시도를 잘 하지 않았다. 그런데 6년이 지난 현재, 그는 석달 남짓 뛰면서 도루를 15개나 따냈다.

 

실제로 경기 직후 MVP를 대상으로 한 공개 인터뷰에서(이 인터뷰는 규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해야 했기에, 현석도 피할 수 없었다.), 한 기자가 이 점에 대해 지적했다. 그러자 현석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대학 시절, 저는 곧 있으면 프로 선수가 되기 때문에 뭄을 상하지 않게 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도루를 자제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올해가 끝나면 계약이 만료되니, 몸을 던져서라도 진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설명에 납득했지만, 지은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서 몸을 아낄 수 없었다고 해도, 평소 도루를 잘 하지 않던 사람이 타이밍을 귀신같이 꿰뚫고 도루를 매번 성사시키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최선을 다하고 싶었을 테고, 훈련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 기량이 발전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지나쳐. 분명 자연스럽지 않아…….’

 

마지막으로, 지은은 현석이 평소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팀동료들로부터 전해들었다. 그들은 현석이 지나치게 밝은 모습을 보이려 애쓰면서도, 일이 잘 안 풀리면 자학을 심하게 한다고 했다.

 

또한 동료들이 자기를 헐뜯고 코치와 감독에게 보고할까봐 심한 경계를 한다고 밝혔다. 지은은 이 점 역시 수상하다고 여겼다.

 

‘물론 절박한 상황이니 성격이 마냥 원만하길 기대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사람이 180도 변했다고 밖에 볼 수 없잖아? 이건 분명 뭔가가 있어. 뭔가가…….’

 

기록을 면밀히 분석한 지은은 현석에게 말 못할 비밀이 있다고 확신했다. 여기에 최근 야구계에 약물이 만연하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그녀는 현석의 비밀이 이와 관련 있다고 여겼다.

 

‘내가 듣기로, 약물을 먹은 사람은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이 상승하지만, 후유증이 심각해서 성격까지 변한다고 하던데……. 현석도 그런 사례는 아닐까?’

 

지은은 선수들이 불법 약물을 복용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스포츠 도핑기구를 찾아가서 현석에 관한 검진 기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 요청은 단번에 거절당했다.

 

“박현석 선수는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이 나왔습니다. 특별한 혐의가 없는 이상, 검진 기록을 공개할 수 없습니다.”

 

지은은 포기하지 않고 현석의 성적이 비정상적으로 향상된 점, 성격이 확 변했다는 동료들의 증언 등을 밝히면서, 재조사를 해달라고 청했다.

 

“현석 선수가 약물을 복용했으리라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취재를 끝까지 거부하고 성격이 거칠어졌다는 걸 보면 분명 뭔가 말 못할 비밀이 있는 거예요. 부디 그를 한 번 더 조사해 주세요.”

 

그러나 그녀의 요청은 또다시 거부당했다.

 

“도핑 검사는 이미 이뤄졌습니다. 그에게 혐의가 있다면 경찰이 먼저 수사해야지, 저희는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니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보통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포기할 것이다. 그러나 지은은 오히려 의지를 불태웠다. 그녀는 경기에 참관하여 현석의 활약상을 쌍안경으로 지켜보면서,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수첩에 메모했다.

 

또, 현석의 지인들과 수차례 접촉하여 그의 언행에 이상한 점이 있는지 캐물었다. 그리고 도핑에 걸리지 않는 약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이 점 역시 조사했다.

 

‘세상에 완벽한 게 없듯이, 도핑 역시 완전하지 못했을 지도 몰라. 도핑에 걸리지 않고도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약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

 

이렇듯 그녀는 현석에게 강한 의혹을 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조사했다. 그러다보니 본래  맡았던 업무에 소홀해져서, 나중에 상사가 그녀를 따로 불러내어 야단쳤다.

 

“요즘 일 안하고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 거냐? 너 설마 아직도 박현석 선수와 인터뷰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게……. 박현석 선수에게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어서…….”

 

“이상한 점?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건데?”

 

“그건……. 아직 조사 중이라서…….”

 

“조사는 무슨 조사! 네가 경찰이냐, 탐정이냐? 괜히 너 때문에 고소당할까 겁나니, 다시는 그 선수 취재하려 들지 마!”

 

“네…….”

 

지은은 겉으로는 상사의 엄명에 응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어떻게든 진상을 파헤치겠다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현석 선수는 떳떳치 않은 일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러니 취재에 절대로 응하지 않는 거겠지.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불법 약물과 관련 있을지도 몰라…….’

 

지은은 이후에도 현석 주위를 맴돌며 비밀을 파헤치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예의주시하는 이가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바로 ‘마법의 약’을 전달하고 조언을 해주기 위해 현석과 자주 접촉했던 민정이었다.

 

지은은 비밀을 파헤치겠다는 열의에 들뜬 나머지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걸 잊어버렸다. 민정은 남성용 의복을 착용하고 두꺼운 코트를 입어서 신분을 감춘 채, 온종일 현석 주위를 맴돌며 취재하는 그녀를 감시했다.

 

민정은 얼마 안가 지은이 현석의 이웃 및 팀동료들과 접촉하여 이런 저런 정보를 입수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도핑 기구에 뺀질나게 출입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녀는 단박에 지은의 의도를 눈치챘다.

 

‘현석 씨의 비밀을 파헤쳐서 세상에 폭로하려는 생각이로군…….’

 

그녀는 한동안 지은의 행동을 살펴본 뒤, 주인으로 모시는 태민이 운영하는 ‘마법의 약국’을 찾아갔다. 한창 손님을 맞이하던 태민은 민정이 찾아오자 정색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지? 네가 여기에 오면 곤란하다는 건 잘 알 텐데?”

 

“급한 일입니다. 부디 시간을 조금만 내주시겠어요?”

 

“이번 손님까지 처리한 뒤 약국 문을 잠깐 닫아두지. 그때까지 밖에서 대기하도록.”

 

민정은 태민의 지시에 순종하여 약국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에 가만히 서 있었다. 10분 후, 태민이 약국 문을 걸어잠그고 그녀 앞으로 걸어갔다.

 

“그래, 무슨 일이냐? 별거 아닌 일로 찾아온 건 아닐 테고…….”

 

민정은 헛기침을 한 차례 한 뒤 답했다.

 

“주인님, 귀찮은 파리가 하나 꼬였습니다.”

 

“파리?”

 

“예. 어느 예쁘장한 아가씨가 현석 씨 주위를 맴돌며 먹잇감을 노리더군요.”

 

태민은 한동안 두 눈을 끔벅이다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물론 유부남인 현석 씨한테 접근하는 그 여자가 불순한 의도를 품은 건 알겠지만, 현석 씨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겨우 그깟 일을 가지고 찾아왔느냐?”

 

민정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주인님. 좀더 들어보세요. 그 아가씨는 기자입니다. 그것도 아주 집요한 기자지요. 그녀는 현석 씨가 최근 약물을 입수하고 있다는 의심을 품고 조사하고 있습니다.”

 

현석은 ‘약물’이라는 단어가 거론된 순간 눈썹 하나를 씰룩거리며 되물었다.

 

“그게 사실이냐?”

 

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스포츠 도핑기구에 자주 들락날락 하는 걸 보면, 그런 의심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음……. 확실히 귀찮게 됐군.”

 

태민은 혀를 끌끌 차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개발한 약을 복용하더라도 검사시 철분 성분이 다량으로 나오는 것 외엔 특별한 게 없어서 도핑에 걸릴 염려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의혹을 품은 자가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현석과 태민에겐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 여자가 혹시라도 현석 씨가 소지하고 있는 약물을 찾아낸다든지 하면 정말 골치아파지겠지…….’

 

이때 민정이 태민에게 바짝 다가가 물었다.

 

“주인님, 제가 그 아가씨를 처리할까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 좀더 지켜보고 결정하자. 지금은 함부로 움직일 때가 아니다.”

 

민정은 태민의 태도가 석연치 않는 걸 보고 동공을 살짝 크게 뜨며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태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짭새들이 나보고 자기네 소굴에 와달라는구나. Mr. Lee에 관해 조사할 게 있으니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달라는 거야.”

 

“주인님. 설마 정보가 샌 건…….”

 

“아냐. 짭새들은 아직 진실을 파악하지 못했을 거야. 다만 Mr. Lee에 대해 조사하던 중 나와 연관된 게 튀어나와서, 이 점에 대해 알아보려고 날 불렀겠지. 제대로 둘러대면 별 탈 없을 테니 걱정 마라.”

 

민정은 호언장담하는 태민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슬쩍 권유했다.

 

“주인님, 이 참에 Mr. Lee와 관계를 끊으시는 게 어떨지……. 만약 그가 경찰에 잡힌다면, 우리까지 연류될 게 뻔하잖아요?”

 

태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거부했다.

 

“그럴 수는 없다. 녀석이 주는 돈이 있어야 실험실을 운영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관계를 끊어버리면 녀석이 보복한답시고 짭새들에게 꼬지를 수도 있겠지.”

 

“그렇다 해도 그가 잡히면 위험한 건 분명합니다. 뭔가 조치를 해야…….”

 

“걱정할 필요 없다, 민정.”

 

태민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Mr. Lee는 짭새들이 순순히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자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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