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크기 조절기능 사용 안내

일부 안드로이드 기종의 경우 폰트크기 조절기능 사용시
정상작동이 안되는 오류가 발생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스마트폰의 기본 글씨 크기를
조정하여 주시면
정상적으로 폰트크기조절
기능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스마트폰 설정 방법

설정 → 디스플레이 → 글자 크기 및 글꼴

닫기

[마법의 약]

7화 가파른 상승세. 그러나.......

가(21)

줄 간격(1.8)

자간(0)

| |

이천 라이즈와의 경기에서 탁월한 활약으로 역전승을이끌어낸 뒤, 현석은 강릉 레빗스의 주전 유격수로 기용되었다. 데뷔 이래 6년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2군을 전전하던 그였기에, 이번 기회는 매우 중요했다.

 

당초 유격수를 맡았던 박진호는 식중독 증세로 병원에 실려간 뒤 대장이 파열되어서 몇 주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대체 자원으로 발탁된 기대주 이동엽은 발목이 돌아가버리는 부상을 입어 역시 4주간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최병도 1군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도 오랫동안 별다른 활약이 없었던 현석을 못미더워해 유격수를 본 적이 없던 김문덕을 억지로 기용하고 현석을 벤치에 박아뒀다.

 

그러나 김문덕이 심하게 부진하자 어쩔 수 없이 현석을 기용했고, 현석은 다시는 오지 않을 지도 모를 기회를 잘 살려 강릉 레빗스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때 현석은 승리에 취해 자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자기를 제대로 기용하지 않으려 했던 감독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를 기용해 준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고, 동료들이 잘한 거지 자기는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현석의 이러한 처신은 그의 입지가 굳건해지는 밑바탕이 되었다. 팀동료들은 현석에게 호감을 품고 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다. 최병도 감독 역시 자기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여기는 현석을 더는 박대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주전 유격수로 발탁되었지만, 현석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임시로 맡았을 뿐, 박진호나 이동엽이 돌아온다면 자리를 뺏기고 2군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어떻게든 두 사람이 돌아와도 차마 날 뺄 생각을 못하도록 진가를 보여야 해. 그래야 오래 생존할 수 있겠지…….’

 

현석은 기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기로 작정하고, 후보 선수일 때보다 훈련을 열심히 수행했다. 매일 훈련이 시작하는 시각보다 한 시간 먼저 훈련장에 들어와서 몸을 푸는 건 기본이고, 훈련이 끝난 뒤에도 한 시간이 넘도록 훈련을 반복했다.

 

특히 호리호리한 몸에 근육을 붙이기 위해 근력운동에 몰두했다. 80kg ~ 120kg 짜리 바벨을 수백 번 들어올렸고, 여유가 있을 때마다 팔굽혀펴기 300회를 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동료들은 땀을 흠뻑 흘리며 훈련에 매진하는 그에게 감탄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했다. 한 번이 현석의 절친한 동료이자 주전 우익수를 맡고 있던 정대은이 좀 쉬면서 하라고 권했다.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게 죽어라 훈련만 했다간 몸에 무리가 갈 거야. 너마저 이상이 생기면 유격수를 볼 사람이 없으니, 몸 관리 잘해.”

 

현석은 단호하게 답했다.

 

“팀의 핵심인 너는 여유를 좀 부려도 되겠지만, 난 그럴 수 없어.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절대로 놓칠 수 없다고!”

 

“현석아…….”

 

“내 걱정은 하지 마. 난 조금도 힘들지 않으니까. 이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다고!”

 

현석은 그렇게 호언장담면서도 내심 정말로 힘들지 않는 자기 몸에 위화감을 느꼈다. 사실 현석은 2군에 박혀 있을 때도 훈련을 성실하게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훈련을 아무리 격하게 해도 전혀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활력이 솟아났다.

 

‘이것도 그 약의 위력인가? 예전 같았으면 힘들어서 못했을 텐데, 지금은 전혀 힘들지 않아. 뭔가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야…….’

 

현석은 몰라보게 달라진 자기 몸에 찝찝해 했고, 약물의 도움을 받아 경쟁에서 이기려드는 자신에게 회의를 느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속으로 읊조렸다.

 

‘그래……. 내가 이러지 않으면 팀에서 쫓겨나 어머님을 돌볼 수 없을 거야.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처지였다면 비슷한 선택을 했을 거야…….’

 

그는 경기에 출진할 때도 최선을 다했다. 타석에 설 때마다 방망이를 어루만지며 “난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라고 중얼거렸고, 수비에서는 글러브로 허벅지를 내리치며 투구를 기다렸다.

 

또한 벤치에서는 감독과 코치, 그리고 동료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기 위해 애썼다. 경기가 잘 안 풀려서 시무룩해 하는 동료에게 먼저 다가가 따뜻한 위로를 건넸고, 반대로 맹활약한 동료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감독이 경기 전 브리핑을 할 때 맨 앞자리에 앉아서 진지하게 경청했고, 코치의 지시를 군말 없이 따랐다. 동료들은 그런 그에게 ‘범생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렇듯 모두에게 진가를 인정받기 위해 사력을 다한 결과, 현석은 눈부신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 주전 유격수로 발탁된 이래 2주간 홈런 다섯 개를 치고 2루타 8개, 3루타 4개를 기록하는 등 압도적인 장타력을 선보였다.

 

비단 타격만 잘한 게 아니라, 주루에서도 탁월한 활약을 선보였다. 그는 출루한 뒤 베이스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다음 베이스를 호시탐탐 노렸다. 그러다 상대가 빈틈을 보일 때 과감하게 도루하여 베이스를 훔쳤다.

 

또한 애매한 타구에도 홈으로 과감하게 돌진해 득점을 이끌어냈다. 한 번은 홈으로 돌진하던 중 상대 포수와 충돌했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가 날아갈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는 상대 포수가 공을 놓친 틈을 타 홈베이스에 몸을 던져 세잎 판정을 이끌었다.

 

“서, 선배님! 괜찮아요?”

 

후배 선수들이 벤치로 돌아온 그에게 몰려와서 걱정을가득 담아서 묻자, 현석은 씩 웃으며 답했다.

 

“뭐, 이 정도 갖고 그래? 야구하다 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경기에서 이기려면 몸을 사려서는 안 되는 법이지.”

 

현석은 수비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유격수 쪽으로 향하는 타구는 여지없이 현석에게 잡혀 1루수에게 전달되었다. 어떤 날은 깊숙한 타구를 잡아낸 뒤 점프하면서 몸을 홱 돌리며 힘차게 던져, 주자를 잡아내기도 했다.

 

게다가 단순히 어깨힘과 순발력에 의존하지 않고, 경기 판세를 읽고 상대를 골탕먹이기도 했다. 한 번은 2루에 있던 주자가 투수의 견제를 피해 2루로 먼저 들어왔다.

 

현석은 공을 받아낸 뒤 투수에게 공을 다시 돌려주는 듯한 동작을 취했고, 주자는 몸을 털며 일어나 무심코 베이스에서 발을 뺐다. 하지만 실은 글러브에 공이 그대로 있었고, 현석은 주자가 발을 뺀 틈을 타 즉시 태그했다.

 

“아웃!”

 

모든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2루심이 주먹을 휘두르며 콜 사인을 외쳤다. 그제야 자기가 속았다는 걸 깨달은 상대 선수가 벙쪄 있자, 현석이 위로했다.

 

“운이 나빴을 뿐이니, 스스로 책망하지 마세요. 다음번에 만회하면 되죠.”

 

이러한 현석의 맹활약은 팀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했고, 하위권에 처져 있던 강릉 레빗스는 성적을 급격히 끌어올려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또한 빈 자리가 많았던 관중석은 어느덧 매진되었고, 팬들은 팀의 승승장구에 진심어린 환호를 보냈다.

 

물론 현석의 인기 역시 치솟았다. 6년간 별다른 활약을 못해 퇴물로 취급받았던 그는, 이제 팀의 성공을 이끌어낸 훌륭한 선수로 각광받았다. 많은 팬이 그를 열렬히 응원했고, 팬레터가 자택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오랜만에 얻게 된 팬들의 지지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경기 후 인터뷰를 할 때마다, 그는 항상 이 말을 덧붙였다.

 

“팬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해 실망시켜서 죄송했습니다. 이제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모두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을 무척 다정하게 대했다. 많은 팀원은 피곤한 나머지 사인하길 귀찮아 했지만, 그는 사인을 기꺼이 해줄 뿐만 아니라, 사진까지 찍어주고 덕담을 건넸다.

 

“저를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일마다 잘 풀리세요!”

 

이렇듯 가파른 상승세를 찍던 어느 날, 현석은 경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인터넷을 통해 경기에 관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자신을 호평하는 댓글이 가득 달린 것을 보고 흡족해 했다.

 

“날 이토록 좋게 봐주는 분이 많다니……. 이게 바로 성공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겠지…….”

 

그러던 중, 그는 한 댓글을 보고 흠칫 놀랐다.

 

“박현석 그 놈 약빨 아니냐? 호리호리하던 놈이 근육을 잔뜩 달고 맹타를 치는 걸 보니 그런 거 같은데?”

 

이 댓글엔 “열심히 하는 선수 모함하지 마라”, “오래도록 고생하다가 이제야 진가를 발휘하는 사람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다”, “증거는 있느냐” 등 수많은 반박글이 달렸다. 댓글을 쓴 당사자도 딱히 현석이 약에 의존한다는 증거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댓글을 오래도록 응시하는 현석의 안색은 무척 창백했다. 그는 입에 손가락을 넣고 살짝 깨물며 안절부절 못했다.

 

“벌써부터 의심을 받다니……. 혹시 약 먹는 걸 본 사람이 있나? 설마 태민 씨가 정보를 흘렸을까……?”

 

그는 매일 경기 시작 직전에 생수병을 한 번에 다 마신 후 출전했다. 동료들이 특이한 습관이라며 연유를 물었을 때, 그는 “속을 깨끗이 하려고 그런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법의 약’을 남몰래 복용하여 강력해진 신체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비밀을 들키지 않았으리라 여겼는데, 약물 복용 의혹을 제기하는 댓글을 봤으니 가슴이 철렁했으리라. 단순히 어그로를 끌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컸지만, 현석은 무척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지금 당장은 다들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장차 그의 활약상이 이어질수록 의심하는 이가 불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구단에게 이 의혹이 전해져, 불시에 신체 검사를 실시할지도 모른다. 그 결과 약물이 발견된다면, 그는 그날로 끝장이다.

 

설령 구단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해도, 언론이 미끼를 물고 떠들어댈 수 있었고, 경찰이 수상함을 느끼고 수사에 착수할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는 이대로 약을 계속 먹었다간 큰일난다고 여겼다.

 

“아무래도 이제 끝내는 게 낫겠어. 계속 약을 먹었다가 꼬리가 잡힐 수도 있으니…….”

 

그는 곧바로 서랍에 들어있던 캡슐들을 전부 챙긴 뒤 변기통에 붓고 물을 내려버렸다. 그리고는 민정과 태민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서 삭제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태민 씨, 민정 씨. 그동안 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관계를 끝내야겠어요. 이대로 계속했다간 끝이 좋지 않을 지도 모르니까요…….”

 

현석이 이같은 과감한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건 고된 훈련으로 단련된 신체가 약을 끊었다고 도로 약해지지 않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도 훈련을 계속 성실히 수행한다면, 별 문제 없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약을 끊은 이후, 그의 성적이 하락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장타는 예전만큼 잘 나오지 않았고, 몸이 천근만큼 무거워져서 재빠르게 움직이기 힘들었다.

 

게다가 상황 판단력도 예전만큼 비상하지 못해, 실책을 종종 벌이기도 했다. 현석은 어떻게든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훈련에 공을 들였지만, 아무리 애써도 약을 먹었을 때처럼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 버거웠다.

 

현석이 이 일로 전전긍긍하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대은이 달랬다.

 

“현석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야구란 게 그런 거 아니곘어? 매일 잘할 수는 없는 거고, 누구나 슬럼프를 피할 수 없지. 너라면 금방 극복할 수 있을 거야.”

 

“그, 그럴까?”

 

“물론이지! 네가 그동안 몸을 혹독하게 굴려서 그런 면도 있을 거야. 좀 쉬엄쉬엄 해! 그래야 몸이 가벼워질 거야.”

 

현석은 대은의 조언이 일리 있다고 여기고, 가급적 여유를 가지려 애썼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양손이 무의식적으로 덜덜 떨리는 걸 보고 경악했다.

 

“소, 손이 왜 이러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는 떨리는 손을 붙들고 진정시키려 했다. 양손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진정되었지만, 그 사이에 이번에는 심한 두통이 밀려왔다.

 

‘으윽……. 머리가 쪼개질 거 같아…….”

 

그는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이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귀가하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그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아서 경기에 출전하기로 했다.

 

이날 현석은 모든 타석에서 삼진, 땅볼, 또는 뜬공으로 물러났고, 수비에서도 에러를 두 차례 범하는 등 여러모로 부진했다. 게다가 안색이 무척 창백해서, 언뜻 봐도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현석은 제 역할을 못한 것에 시무룩해져 고개를 푹 숙인 채 귀가하려 했다. 이때 코치가 그를 불렀다.

 

“현석아! 감독님이 찾으신다.”

 

현석은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속으로 읊조렸다.

 

‘오늘 왜 이리 못했냐며 질책하시겠구나…….’

 

이윽고 감독실에 들어온 현석은 그럴듯한 변명을 하려 했다.

 

“감독님, 오늘 제가 잘 못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슬럼프일 뿐이예요. 다음번에는 이번 부진을 만회할 테니 부디 기회를…….”

 

최병도 감독은 그런 그를 응시하다가 슬쩍 물었다.

 

“현석아, 너 어디 아프니?”

 

“네?”

 

“안색이 너무 창백해서 중병에 걸린 것 같더라. 혹시 몹쓸 병이라도 걸렸어?”

 

현석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부정했다.

 

“아, 아닙니다 감독님! 전 멀쩡해요!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뿐입니다.”

 

“정말이니?”

 

“예, 감독님! 믿어주십시오! 전 멀쩡합니다!”

 

현석이 미소를 애써 지으며 자기가 건재하다는 걸 과시했지만, 최병도 감독은 여전히 의심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러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멀쩡하다니 다행이구나. 그렇지만 앞으로 몸 관리 잘해라. 너까지 이상이 생기면 유격수를 볼 사람이 없어.”

 

“무, 물론입니다, 감독님! 몸조리 잘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만 나가봐라. 난 동엽이 문병이나 다녀와야겠다.”

 

그렇게 감독과의 면담을 마친 뒤, 현석은 자택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감독이 마지막에 내뱉은 말이 박혀 있었다.

 

‘동엽이 문병을 다녀온다……. 역시 감독님은 아직도 동엽이를 밀어주고 싶으신 거야. 이러다가 동엽이가 무사히 재활을 마치고 돌아오면, 내가 도로 밀려나겠어…….’

 

그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한참 동안 어찌해야 할지 고민했다. 태민을 재차 찾아가서 약을 받는다면, 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약에 의존한다면, 장차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이를 어쩌지? 약을 받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안 받기도 그렇고……. 정말이지 골치아프게 됐어…….’

 

한동안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던 그는 이윽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눈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거둔 성공을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만들 수는 없어. 절대로 그럴 수는 없지……!”

 

그는 곧바로 집에 전화를 걸어 약속이 있어서 늦게 돌아갈 예정이라고 알린 뒤, 발걸음을 돌려 어디론가로 향했다. 한참 걸어간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폐건물이었다.

 

“여기 지하에 실험실이 있었지. 태민 씨가 있을려나……?”

 

현석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혹시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봤다. 아무도 없는 게 확인되자, 그는 숨을 죽이며 지하로 내려갔다. 이윽고 지하실 정문에 이르자, 그는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태민 씨! 저 박현석입니다.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잠시 침묵이 이어진 후,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온갖 약품을 의사의 가운 여기저기에 묻힌 태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현석이 갑자기 찾아온 것에 놀랐는지, 어리둥절해 했다.

 

“아니,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약이 다 떨어지려면 한참 남았을 텐데요? 설령 다 떨어졌다고 해도, 민정이에게 말씀드리면 제가 곧바로 보내드렸을 겁니다. 그런데 어찌……?”

 

현석은 잠시 어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거짓말 했다.

 

“실은 그 약 전부 잃어버려서요.”

 

‘잃어버렸다고요?”

 

“예. 그걸 민정 씨에게 말씀드리기 민망해서, 제가 직접 찾아왔습니다. 폐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태민은 한동안 현석을 응시하다가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차갑게 내뱉었다.

 

“현석 씨는 야구는 잘하시지만 거짓말은 영 못하시는군요.”

 

“거, 거짓말이라니요? 정말로 잃어버렸다고요.”

 

현석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태민은 콧방귀를 살짝 뀌며 대꾸했다.

 

“현석 씨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걸 보면, 거짓말이라는 걸 누구나 간파할 수 있지요. 솔직히 말하세요. 안 그러면 약을 전해드릴 수 없습니다.”

 

거짓말이 보기좋게 들통나자, 현석은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사실을 밝혔다.

 

“실은 제가 직접 버렸습니다. 변기통에 캡슐을 전부 부어서 물을 내렸어요.”

 

“왜 그러셨죠?”

 

“제가 약물을 복용했을지도 모른다는 댓글이 달린 걸 보고, 이러다 의심받을까 걱정돼서 그만…….”

 

태민은 현석의 설명을 듣고 가만히 턱을 붙잡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했다.

 

“또다른 이유가 있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무, 무슨 말씀이신지……?”

 

“약의 힘을 빌러 신체를 강건하게 만들고 난 뒤, 이제는 약이 필요없다고 여기고 버리셨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후유증이 심하니까 절 찾아오셨겠죠. 안 그렇습니까?”

 

현석은 자기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는 태민에게 질린 나머지 얼이 빠진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태민은 혀를 끌끌 차며 그런 현석을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차디찬 어투로 말했다.

 

“저는 현석 씨를 존경했습니다. 대학 시절 홈런왕이셨고,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팀을 우승까지 이끌어낸 리더셨죠. 그런 현석 씨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보필하려 했는데, 이런 식으로 갚으시는군요.”

 

현석은 급히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태민 씨를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약도 꼬박꼬박 챙겨먹겠습니다.”

 

태민은 현석을 한동안 내려다보다가 한결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법이죠. 하지만 실수를 반복하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잘 아시겠죠?”

 

“예, 예…….”

 

“그동안 약을 공짜로 드렸지만, 효능이 입증된 이상 앞으로는 제값을 받아야겠습니다. 한 달에 백만원 씩 수표로 주십시오.”

 

현석은 태민의 요구에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하, 한달에 백만원을 수표로 주라고요?”

 

“예. 연구비가 많이 드는 터라, 현석 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그렇지만……. 한 달에 백만원은 좀…….”

 

현석이 여전히 우물쭈물하자, 태민은 정색하며 차갑게 내뱉었다.

 

“싫으면 이만 돌아가십시오. 다시는 약을 공급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하시지요.”

 

이에 현석이 양손을 휘저으며 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앞으로 한 달에 백만원씩 드리지요!”

 

“좋습니다. 그럼 거래 성립이군요.”

 

태민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현석 씨의 앞날에 축복만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이리하여 현석은 태민에게 약을 받는 대가로 한 달에 100만원씩 수표로 지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당시 수천 만원 대 연봉을 받던 현석의 입장에선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계약은 장차 그를 궁지로 몰아넣는 결과를 야기한다…….

다음화 보기

신고

신고사유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 0 / 250

도장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