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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약]

9화 약사의 사정

가(21)

줄 간격(1.8)

자간(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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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춘천시와 함께 강원도를 대표하는 도시, 강릉. 20만 인구가 거주하는 이 도시는 관광지로 명성이 자자해 매년 수백만 관광객이 찾아와 여러 명소를 들락거리곤 한다.

 

이 도시를 연고지로 삼은 프로야구 팀이 바로 강릉 레빗스다. 이들은 창단 이래 하위권을 전전하기만 할 뿐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해서, 몇몇 골수팬을 제외하면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현석의 대활약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면서, 강릉을 비롯한 강원도 전역에서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단순히 여름 더위를 피하려고 강릉을 찾아왔던 관광객들은 이젠 강릉 레빗스 경기장에 들락거렸고, 강릉시는 이 덕분에 큰 수익을 챙겼다.

 

강릉시 측은 이런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 더 많은 수익을 챙기기 위해 노력했다. 시내 곳곳에 강릉 레빗스 를 응원하는 플랜카드를 세웠고, 현석을 비롯한 선수들을 찍은 홍보물을 부착했다.

 

또한 레빗스 마스코트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시민들에게 상품권을 나눠주면서 레빗스 경기를 보러 와달라고 부탁했고, 레빗스 응원가가 곳곳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이런, 이런……. 꽤 시끌벅적해졌군.”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마법의 약국’ 정문을 열쇠로 풀던 태민은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레빗스가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젠 어딜 가도 레빗스 얘기만 하는군. 이러다 우승이라도 하면 난리 나겠구만.”

 

태민은 정문을 열고 약국으로 들어와 옷걸이에 걸려 있던 의사 가운을 걸치며 말을 이었다.

 

“뭐, 나야 나쁠 거 없지. 박현석 선수가 잘하면 잘할수록 그에게서 얻어낼 게 많을 테니까. 조그만 더 하면 본전을 뽑을 수 있겠지…….”

 

그 후 태민은 제조실에 자리잡아 약 제조에 몰두했다. 그러다 손님이 약국에 들리면, 곧바로 밖에 나와서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손님! 꿈과 희망이 가득한 마법의 약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손님들은 그가 운영하는 약국이 무척 특이하게 여겼다. 천장에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마녀 인형이 대롱대롱 달려 있고, 계산대 위에 마법사 특유의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이목구비가 새겨진 호박이 덩그러니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태민은 손님들 앞에서 약을 제조할 때마다 ‘마법 주문’을 거는 듯 알아듣기 힘든 말을 쉴새없이 중얼거렸고, 제조가 완료되면 손님들에게 약을 건네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제가 이 약에 마법을 걸어뒀으니, 복용하시면 금방 나으실 겁니다!”

 

손님들은 이렇듯 특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마법의 약국’을 재밌게 여겨 자주 방문했다. 아예 단골이 된 이도 상당했다. 태민은 그 덕분에 시내 곳곳에 세워진 수많은 약국간의 경쟁을 이겨내고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따라 약국을 찾아오는 손님이 적어서, 태민은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책상 위에 가득 쌓여있는 서류를 일일이 살펴보며 생각에 잠겼다.

 

‘흠……. 지금까진 연구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군. 이대로라면 2, 3년 사이에 완료되겠어. 물론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방심하지 말아야지…….’

 

태민이 서류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벨 소리가 들려왔다. 태민은 즉시 서류를 옆에 치우고 밖에 나가 활짝 웃으며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사랑과 인정이 가득한 마법의 약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러다가 약국을 찾아온 인물의 정체를 알게 되자, 그는 다소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야, 정호잖아? 여긴 무슨 일이야?”

 

상대는 피식 웃으며 그런 태민에게 되물었다.

 

“왜? 내가 여기 오면 안 되냐?”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너 아직 근무 중 아니었어? 병원은 어쩌고?”

 

“하루 휴가를 냈어. 그동안 너무 바빠서 탈진 직전까지 갔거든. 그래서 하루만이라도 푹 쉬기로 했지.”

 

이 사내는 마법의 약국에서 100m 떨어진 ‘행복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장정호다. 그는 의대 재학 시절부터 태민과 친하게 지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태민이 운영하는 약국에 가끔 들려서 담소를 나누곤 했다.

 

“야! 기왕 휴가를 썼으면 제대로 쉴 것이지, 여긴 왜 왔어?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바캉스라도 떠나지 그랬니?”

 

태민이 빈정거리는 투로 묻자, 정호는 머리를 긁적이고 한숨을 푹 내쉬며 답했다.

 

“말도 마라. 아내가 나더러 저녁에 쓸 재료를 사오란다. 기껏 휴가를 냈더니 음식이나 사오라니……. 그래서 음식 사려고 쇼핑몰에 가던 중에 네가 일하는 게 보여서 잠깐 들렀다 가려고.”

 

“뭐야, 그럼 시간 떼우려고 찾아온 거야? 이것참 서운한걸?”

 

“뭐 어떠냐? 보아하니 너도 오늘따라 손님이 별로 안오는 것 같던데. 잠깐 잡담해도 괜찮잖아?”

 

“하긴……. 잠깐 앉아 있어. 차를 끓여서 줄 테니까.”

 

그 후 두 사람은 접대실에 마련된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정호가 슬쩍 물었다.

 

“요즘 지은이 상태는 어떠니?”

 

태민은 정호의 질문에 안색이 흐려졌다. ‘지은이’, 즉 황지은은 황태민의 8살짜리 외동딸로, 3살 때 어머니와 사별한 뒤 태민과 단둘이서 살아갔다.

 

아이는 어린 나이에도 아버지가 직장에서 일할 때 홀로 잘 지낼 정도로 의젓하고, 여러 친구를 사귈 정도로 사교성이 좋고 명량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태민은 그런 딸을 무척 아껴서, 집에 돌아올 때면 언제나 선물을 주곤 했다.

 

그러나 지은에겐 한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몸이 약하다는 것이다. 간혹 열병에 걸려 하루종일 앓아눕기도 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재채기를 심하게 하고, 잘 놀다가 돌연 숨이 턱 막혀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태민은 그런 딸이 잘못될까봐 노심초사했다. 지은이 “전 괜찮으니 너무 걱정마세요.”라며 안심시키려 애썼지만, 그는 근심을 떨칠 수 없었다. 병원 여러 곳에 들려 치료받게 했지만, 증세를 일시적으로 가라앉힐 뿐 완전히 완쾌시키지 못했다.

 

이에 태민은 자기가 직접 딸을 치료해야겠다고 판단하고, 약국을 운영하는 틈틈이 제조실에서 약을 제조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약사라고 해도, 시약청의 검증을 받지 않고 의사의 처방도 받지 않은 약을 복용시키는 건 엄연한 불법이었다.

 

하지만 그는 비싼 돈을 들여가며 쓸모도 없는 약을 사느니,차라리 자기가 만드는 게 낫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제조한 약을 딸에게 먹였다.

 

“……. 그럭저럭 호전됐어. 여전히 재채기를 자주 하지만, 열이 나는 빈도가 줄어들었어. 하지만 여전히 숨을 못 쉬는 증세는 계속되고 있어.”

 

태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푸념을 섞어가며 대답했다. 정호는 그런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깨에 손을 얹으며 격려했다.

 

“언젠가 나아지겠지. 언젠가 의학기술이 발전해서 약한 체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날이 올 걸세. 그때까지 버티게나.”

 

태민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 날이 언제 올까? 10년? 20년? 어쩌면 우리가 죽고 나서야 이뤄질 수도 있겠지. 골골거리는 딸을 데리고 완치시키지도 못하는 병원에 들락거리니, 정말이지 골치 아플 지경이야.”

 

정호는 은근히 병원과 의사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태민이 부담스러웠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의사로서 미안할 따름이네. 하지만 우린 마법사가 아닐세. 판타지 속 마법사라면 ‘힐링’ 기술로 완쾌시킬 수 있겠지만, 우린 그럴 수 없어. 그저 현재 주어진 기술에 따를 뿐이네.”

 

태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나라고 그런 걸 어찌 모르겠나? 그저 답답할 뿐이야. 잔병에 걸릴 일 없는 완벽한 신체를 창조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정호는 친구의 넋두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자네, 설마 대학 때 품었던 망상을 가진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지금 당장 지우게!”

 

“망상?”

 

“그래! 자네가 내게 이리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을 병마에 시달리지 않는 완벽한 체질로 바꿔야 한다’고 말일세. 그러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야.”

 

태민은 심각한 표정을 짓는 정호를 힐끗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며 말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군. 아무튼 그런 마음은 이미 접은 지 오래니, 안심해도 좋네.”

 

“……. 정말이지?”

 

“물론이지. 평범한 약사로 지내는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나?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게.”

 

태민은 한사코 부정했지만, 정호는 여전히 불안해 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불안해 한 까닭은 대학 시절 태민에게 받은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 생체 실험? 자네, 지금 생체 실험이라고 했나?”

 

“그래. 인류의 앞날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일이야. 지원자를 받든지, 아니면 죄수들을 동원하든지 해서 인력을 확보한 뒤, 그들의 몸을 개조해서 웬만해서는 병에 걸리지 않는 완벽한 신체를 탄생시키는 거지.”

 

“하, 하지만……. 그랬다가 일이 잘못되면 어쩔 텐가?”

 

“뭐, 다소의 희생은 어쩔 수 없지. 인류의 발전사에서 희생이 따르지 않은 적은 없었으니까. 인류가 탈바꿈할 수 있다면, 그 희생은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을 거야.”

 

정호는 자기 앞에서 대놓고 ‘생체 실험’을 운운하고 “다소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했던 태민을 두려워했다. 그가 보기에 태민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의학자로서 부적절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 후 태민은 약사로서 착실하게 살아가는 듯했지만, 정호는 여전히 그를 예의주시했다.

 

‘부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지금처럼 조용히 살아주면 좋을텐데…….’

 

그때, 태민이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보고 정호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 얼른 쇼핑하러 가야 하지 않나? 이러다 늦으면 아주머님이 화내시겠어.”

 

정호는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쳐다봤다. 잠시 후, 그는 기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많이 지나다니! 이거 얼른 가야겠구먼! 차 대접해줘서 고맙네. 나중에 다시 보세!”

 

정호가 허겁지겁 밖으로 나간 뒤, 태민은 차갑게 식어버린 차를 홀짝이며 중얼거렸다.

 

“망상……. 망상이라……. 참 쉽게도 말하는군…….”

 

그는 다 마신 종이컵을 손으로 찌그러뜨리고 두 눈을 부릅뜨며 중얼거렸다.

 

“나름 친하게 지낸 녀석도 그런 말을 지껄이니, 다른 놈들이야 말할 필요 없겠지. 어디 두고보라고. 반드시 사명을 이루고 말 테니까……!”

 

이윽고 해가 저물자, 태민은 약국의 불을 끄고 정문을 걸어잠근 뒤 어디론가로 향했다. 한창 발걸음을 옮기던 그가 도착한 장소는 허물어져가는 폐가였다. 태민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언제봐도 황량하기 짝이 없는 곳이야. 도둑고양이도 이런 곳에 살고 싶지 않겠지. 뭐, 그 덕분에 귀찮게 구는 놈들이 없어서 다행이다만…….”

 

이후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간 그는 자기 앞을 가로막은 철문을 두, 세번 노크했다. 그러자 문 뒤에서 한 여인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암호를 대세요.”

 

태민은 목청을 잠깐 가다듬은 후 답했다.

 

“네오 휴먼.”

 

잠시 후 ‘딸깍’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의사 가운을 입은 민정이 문을 벌컥 열었다.

 

“주인님, 어서 오세요. 오늘 별고 없으셨나요?”

 

“별 일 없었다. 현석 씨는 잘하고 있더냐?”

 

“예. 오늘 안타 2개를 치셨어요. 그런데 안색이 별로 밝지 않으시더군요.”

 

“왜?”

 

“그건 저도 모르죠. 다만 고민이 많아보였어요.”

 

태민은 민정의 설명을 듣고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속으로 읊조렸다.

 

‘보나마나 약을 먹고 잘하는 게 프로 선수가 할 짓인지 고뇌하는 거겠지. 그딴 알량한 도덕 따위 접어두고 얌전히 도핑받는 게 본인 신상에 좋을 텐데…….’

 

이때 민정이 한 가지 사실을 추가로 보고했다.

 

“좀전에 손님 한 분이 오셔서 주인님을 만나뵙고 싶어 하셨어요.”

 

“손님?”

 

“예. 일단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게 했습니다만…….”

 

태민은 손님이 왔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껄끄러워 했다. 세간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폐가 지하실에서 비밀 연구를 하고 있건만, 외부인을 가볍게 맞이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민정, 내가 누누이 말했을 텐데? 외부인은 출입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이야.”

 

태민이 엄한 목소리로 꾸짖자, 민정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면서도 이유를 설명했다.

 

“이전에도 자주 찾아오신 분이라서 열어줬어요.”

 

“자주 찾아온 사람……? 아, 그 사람이군.”

 

태민은 한숨을 살짝 내쉰 뒤, 민정에게 손님이 있는 곳을 안내하게 했다. 이윽고 실험실에 들어선 그는 짐승들이 울부짖는 우리들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사내를 목격했다.

 

그는 중절모를 머리에 쓰고, 검은색 외투를 온몸에 걸쳤으며, 입엔 갈색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눈은 선글라스로 가리고 있었다. 또한 볼에 깊은 상처가 십자형으로 나 있었고, 양손엔 검은색 가죽장갑을 끼고 있었다.

 

“미스터 리. 오랜 만에 뵙는군요.”

 

태민이 뒤에서 말을 걸자, 그때까지 우리를 관찰하고 있던 사내가 뒤돌아봤다.

 

“음, 태민 군이 이제야 왔군. 별고 없었나?”

 

“저야 잘 지내고 있죠. 사업은 잘 되십니까?”

 

“뭐, 그럭저럭 잘 되고 있지. 짭새들이 최근에 귀찮게 굴긴 하지만, 조만간 조용해 질 거야.”

 

“짭새? 설마 경찰이 눈치챈 겁니까?”

 

태민이 눈을 부릅뜨며 되묻자, ‘미스터 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답했다.

 

“당연히 아니지. 만약 그랬다면 이 몸이 여기 있을 리 없잖나? 진작에 잡혀서 감방에 갇혔겠지. 물론 자네도 함께 갇혔을 테고.”

 

“……. 그럼 그들이 귀찮게 군다는 건 뭐죠?”

 

“요즘 마약 수사가 엄해져서 말이야. 내가 제공한 약물을 복용하던 손님 몇 명이 체포됐어. 짭새들은 그 손님들을 달달 볶아서 약을 제공한 자를 찾으려는 모양이더라고.”

 

“그렇다면 상황이 그리 좋지 않군요.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냐고? 훗…….”

 

미스터 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태민에게 바짝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이 몸은 짭새들의 추적을 피해 8년간 여기저기를 횡행한 분이시다. 녀석들이 아무리 애를 쓴들, 내가 잡혀줄 거 같으냐?”

 

“…….”

 

“흥, 영 탐탁치 않다는 표정이군. 뭐, 좋아. 나도 너와의 관계를 돈독히 다지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거래나 끝내고 돌아갈 테니 걱정 말라고.”

 

미스터 리는 손에 쥐고 있던 철가방을 들어올려 책상 위에 올렸다. 그가 잠겨 있던 걸쇠를 모두 풀어서 뚜껑을 열자, 가방에 들어있던 내용물이 드러났다. 그것은 바로 5만원짜리 지페더미였다.

 

“미스터 리. 전 수표를 받길 원했지, 돈다발은 원하지 않았는데요?”

 

태민이 인상을 살짝 지푸리며 묻자, 미스터 리는 한숨을 살짝 내쉬며 대꾸했다.

 

“나도 알지만, 감시가 심해져서 은행에 들릴 수 었어야지. 조직원 녀석들을 시켜 현금을 끌어모은 거니까 너무 뭐라 하지 말라고.”

 

“…….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약 케이스를 드리지요. 민정, 가져와라.”

 

민정은 지시가 내려지는 즉시 상자 하나를 번쩍 들어서 책상 위에 올려놨다. 태민은 상자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이 안에 캡슐 1,000 개가 들어 있습니다. 이만하면 되겠지요?”

 

미스터 리는 상자를 열어서 캡슐 하나를 꺼내서 복용했다. 그 직후, 그는 낄낄 웃으며 답했다.

 

“좋아! 준비를 잘해뒀군. 거래 성립이네.”

 

태민은 여전히 걱정이 됐는지 그에게 넌지서 권했다.

 

“다음 번엔 다른 장소에서 만납시다. 여기에 바로 찾아오지 마십시오.”

 

“왜? 짭새들이 눈치챌까봐?”

 

“당신이 여길 자주 방문하면, 그들이 여길 수상하게 여겨 조사하려 들지도 모르니까요. 부탁드립니다.”

 

미스터 리는 태민의 부탁을 한동안 숙고한 뒤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며 승낙했다.

 

“좋네. 그럼 이 명함을 챙기게. 나중에 거래할 일이 생기면 여기에 전화를 걸어서 알려주게.”

 

태민은 미스터 리가 건넨 명함을 챙겨서 민정에게 넘겨줬다. 그 후 미스터 리는 상자를 챙긴 채 자리를 떠났고, 태민은 그가 떠나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후……. 드디어 떠났군. 정말이지 숨막혀서 죽는 줄 알았어.”

 

그때 민정이 슬쩍 다가와 물었다.

 

“주인님, 저 자와 계속 거래할 생각이십니까?”

 

“그건 왜 묻는 거냐?”

 

“경찰이 저 자를 지명수배한지 오래입니다. 계속 줄을 댔다가 저 자가 잡히기라도 하면 모든 게 탄로날 텐데요. 차라리 다른 방법으로 돈을 마련하시는 게…….”

 

태민은 민정의 우려를 듣고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이 실험실 약재와 동물, 기구 등을 마련하려면 저 자가 건네는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이걸 무슨 수로 대체한단 말이냐?”

 

이에 민정이 재차 권했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저 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다가 일이 골치 아파지지 않겠어요? 만약 돈을 적게 주거나 아예 종적을 감춰버린다면 곤란해지니, 사전에 돈줄을 따로 마련하는 게 어떠신지…….”

 

태민은 민정의 권유를 듣고 한동안 턱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하긴……. 저 정체불명의 사내만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지. 다른 데서도 돈을 구하는 게 좋겠지. 하지만 무슨 수로? 비밀 실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텐데…….’

 

그는 한동안 고민에 잠겨 있다가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박현석 선수는 나 덕분에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지? 야구 선수는 잘 나가면 억대 연봉을 받는다고 하니……. 그래! 바로 그거야!’

 

태민은 그때까지 자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민정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지시했다.

 

“너, 지금부터 현석 씨에게 ‘수수료’를 받아내라.”

 

“수수료요?”

 

“그래. 그동안 마법의 약을 무료로 제공했지만, 앞으로는 대가를 받아내야겠어. 캡슐 하나당 10만원 씩 내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현석 씨가 이번 시즌이 끝나면 새 계약을 체결한다고 한다는데, 네가 옆에서 도와줘서 가능한 한 많은 연봉을 받게 해. 알겠나?”

 

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주인님의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그럼 전 실험에 복귀하겠습니다.”

 

민정이 자리를 뜬 뒤, 태민은 양 손을 싹싹 비비며 중얼거렸다.

 

“좋아…….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어. 현석 씨는 점점 내가 원하는 대로 신인류로 거듭나고 있고, 그가 벌어들인 연봉 일부가 곧 들어오겠지. 그럼 미스터 리만 믿고 가지 않아도 될 테고, 실험은 성공할 거야…….”

 

그는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인간의 체질을 완벽하게 만들 약을 개발하고 나면, 정호는 망상이니 뭐니 지껄였던 걸 후회하겠지……. 암, 그렇고 말고……!”

 

그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키득거리며 밝은 미래를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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