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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약]

4화 첫번째 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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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이 태민으로부터 ‘마법의 약’을 전달받은 다음날 오후, 강릉 레빗스 선수들은 몇 시간 뒤에 있을 2군 경기를 대비해 런닝 훈련, 캐치볼 훈련, 타격 훈련 등 각종 훈련을 수행했다. 물론 현석도 훈련에 참여해 구슬땀을 흘렸다.

 

하지만 평소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던 것과는 달리, 이날은 훈련보다는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동료가 던진 야구공을 글러브로 받고, 다시 야구공을 던지길 반복했다.

 

‘마법……. 마법이라……. 분명 마법같은 일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랬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현석은 불현듯 호주머니가 묵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안에는 알약 하나가 담긴 비닐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이 조그마한 알약에 복잡한 감정을 품었다.

 

프로로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고, 이 알약이 과연 자기에게 도움이 될까 의심을 품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자기가 이걸 가지고 있는 게 발각되면 모든 게 끝장이라는 불안감을 품기도 했다.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기에, 그는 훈련에 진지하게 임하지 못했다. 그 순간, 야구공 하나가 현석에게 날아왔다. 하지만 현석은 그걸 미처 알아채지 못해 이마에 야구공이 직격하는 걸 막지 못했다.

 

“악!!!”

 

현석은 갑작스런 통증에 이마를 손으로 감싸며 외마디소리를 내질렀다. 그에게 공을 던진 동료가 당황해 하며 달려왔다.

 

“혀, 현석아! 괜찮아?”

 

현석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 그래! 별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이때 김정수 2군 감독이 호통쳤다.

 

“야! 지금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거냐? 너 지금 선발이 아니라고 설렁설렁하는 거냐?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거 아냐?”

 

현석은 급히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감독님! 시정하겠습니다!”

 

김정수 감독은 그를 한동안 흘겨보다가 혀를 끌끌 차며 한결 부드러워진 어조로 말했다.

 

“뭐, 네 마음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만……. 그래도 프로답게 처신해라.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현석은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이며 사과했고, 김정수 감독은 다른 곳으로 갔다. 감독이 떠난 뒤,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팔로 닦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괜히 딴 생각했다 혼나버렸네.”

 

하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은 감독의 한 마디 때문에 쓰라렸다.

 

‘프로답게 처신해라……. 그러면 그 짓은 더욱 해서는 안될 텐데…….’

 

그는 호주머니를 슬며시 만지작거렸다. 동글동글한 알약의 촉감이 느껴지자, 눈을 질끈 감으로 속으로 읊조렸다.

 

‘그렇지만 이 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영영 재기할 수 없을 지도…….’

 

몇 시간 후, 강릉 레빗스 2군팀과 울진 크랩스 2군 팀의 경기가 벌어졌다. 선수들은 여기서 실력을 발휘하여 1군에 승격하겠다는 꿈에 잔뜩 부풀어 올랐다. 그들은 자기만의 주문을 외거나 방망이를 힘차게 휘젓는 등 의욕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현석은 벤치 구석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올해가 끝나면 방출될 운명이었기에, 승격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벽에 붙어있는 선발 명단을 힐끝 쳐다보고는, 냉소를 지으며 속으로 읊조렸다.

 

‘하긴, 약을 받든 말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데 무슨 소용이겠어? 괜히 쓸데없는 고민을 한 것 같구만…….’

 

그 후 팀원들은 출전 선수들을 향해 열띤 응원을 보냈지만, 현석은 형식적으로 손뼉을 칠 뿐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기 포지션인 유격수를 맡고 있는 신인 선수를 바라봤다.

 

‘이동엽……. 조만간 1군으로 승격하겠지? 구단으로부터 기대를 잔뜩 받고 있으니 말이야. 부럽구만…….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6년 전의 상황을 회상했다. 당시의 그는 현재 이동엽 이상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대학 야구리그 홈런왕이자 유격수로서 탁월한 수비력을 선보였으니, 어찌 그러지 않았겠는가?

 

‘그때는 원하는 걸 다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너도 지금 당장은 좋겠지만, 언젠가 쓴 맛을 톡톡히 보게 될 거야.’

 

현석은 자기보다 8살이나 어린 이동엽을 노려보며 냉소를 흘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동엽은 이날도 홈런을 치는 등 상당한 활약을 보여줬다. 동료들은 이동엽의 활약에 감탄사를 늘어놨고, 현석은 속이 탔다.

 

‘후우……. 결국 오늘도 기회를 얻지 못하겠구나…….’

 

바로 그때, 이변이 벌어졌다. 이동엽이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공을 잡으려 했다가 발목이 꺾이는 바람에 “악!”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쓰러진 것이다. 즉시 의료진이 달려가서 상태를 확인한 뒤, 덧아웃을 향해 양 팔을 X자로 교차했다.

 

“이런…….”

 

김정수 감독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탄식했다. 그는 이마를 감싸쥐고 무언가를 숙고하다가, 현석을 돌아보며 지시했다.

 

“현석아, 몸 풀어라.”

 

“네, 네?! 저, 저 말입니까?”

 

“그래. 동엽이는 더 뛸 수 없다는구나. 네가 대신 나서야겠다.”

 

현석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에 얼떨떨해하며 답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에 나가려다 문득 멈칫했다.

 

“잠깐 물 좀 마시겠습니다. 오랜만의 출전이라 그런지 긴장되네요…….”

 

김정수 감독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프로 경력이 몇년인데 겨우 이정도 가지고 긴장하니?”

 

“……. 면목이 없습니다.”

 

“뭐, 알아서 해라. 난 동엽이 상태 좀 확인해야겠다.”

 

감독의 허가를 받은 뒤, 현석은 정수기에 다가가 종이컵에 물을 담고는,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에 호주머니에서 알약을 꺼내 입에 넣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이후 소매로 입을 닦고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린 후,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안 봤겠지? 좋아…….!’

 

현석은 글러브를 연이어 치며 경기장에 들어섰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기로 작정했다.

 

‘이 알약이 큰 도움이 될 지 모르겠어. 어쩌면 태민이란 자가 사기를 쳤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는 없어……!’

 

이리하여 경기에 출전한 현석은 유격수 자리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이윽고 투수가 야구공을 던지고, 상대 타자는 방망이를 힘차게 휘둘렀다.

 

“딱-“

 

야구공은 타격음과 함께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3루수가 야구공을 잡으려 몸을 날렸지만, 공은 그의 글러브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현석이 잽싸게 달려가서 공을 낚아챈 뒤, 점프하면서 몸을 급격히 틀어 1루를 향해 던졌다. 타자는 1루를 향해 급히 달려갔지만, 그가 베이스를 밟기 직전에 공이 1루수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아웃-!!!”

 

심판은 주먹을 힘차게 휘두르며 콜 사인을 보냈다. 타자는 무척 아쉬워하며 고개를 떨구고, 현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투수는 현석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칭찬했다.

 

“선배, 나이스 플레이! 오늘 파이팅이 넘치시는데요?”

 

현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우, 운이 좋았던 것뿐이야…….”

 

하지만 현석은 내심 석연치 않은 기분을 느꼈다.

 

‘뭐지……? 몸이 평소보다 가벼워……. 설마 효과가 벌써 나온 건가……?’

 

그 후 상대팀의 공격을 막아낸 강릉 레빗스는 다음 회에서 반격할 기회를 맞이했다. 당시 스코어는 3:1로 강릉 레빗스가 지고 있었고, 현석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는 2아웃에 주자가 1, 2루에 있었다.

 

‘여기서 찬스를 살린다면, 역전이 가능해. 하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아웃되어 버리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지도 몰라.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야 해. 잡아야 하고 말고…….’

 

현석은 실날같은 희망을 붙들며 타석에 들어서 투수를 바라봤다. 이윽고 투수가 공을 던지자, 현석은 방망이를 휘두르려 했다. 그러다 문득 움찔하며 방망이를 멈췄고, 포수는 바닥에 떨어진 야구공을 받아냈다.

 

“볼!”

 

심판이 콜 사인을 보내고, 상대 투수는 혀를 차며 아쉬워 했다. 현석은 방금 전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분명 휘두르려 했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방망이를 멈추다니……. 이 느낌은 대체……?’

 

현석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상대 투수는 다시 와인드업한 뒤, 공을 세차게 던졌다. 현석은 이번에는 방망이를 힘차게 휘둘렀고, 야구공은 “딱-“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 높이 치솟았다.

 

현석은 그라운드를 뛰며 야구공을 바라봤다. 그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야구공에게 호소했다.

 

‘제발 넘어가! 넘어가라고!’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야구공은 펜스에 맞고 경기장 안으로 도로 들어왔다. 그렇지만 주자 2명은 이미 들어왔고, 현석은 2루 베이스를 돌았다.

 

이때 3루 주루코치가 멈추라는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현석은 야구공이 상대 수비 상황을 힐끗 바라본 뒤, 냅다 3루로 뛰어갔다. 그때 공을 막 주웠던 상대 선수는 급히 3루를 향해 던졌다.

 

“제발!!!”

 

현석은 외마디소리를 내지르며 3루를 향해 있는 힘껏 달려갔다. 그러다 베이스 앞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고, 상대 선수를 공을 글러브로 받아낸 뒤 현석의 머리에 갖다 댔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렁이는 가운데, 경기장에 있던 모든 이가 숨죽이며 심판의 판정을 기다렸다. 심판은 한동안 상황을 확인 한뒤, 양팔은 좌우로 힘차게 휘저으며 외쳤다.

 

“세잎! 세잎!!!”

 

현석이 아슬아슬하게 공보다 먼저 베이스에 닿은 것이었다. 현석은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좋았어!!!”

 

덧아웃에서도 동료들이 현석을 향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늘 대박이시네요, 선배! 나이스 플레이였습니다!”

 

“아까 수비 떄도 그렇고 오늘 되게 날아다니시네요!”

 

현석은 방긋 웃으며 덧아웃을 향해 손을 흔들며 고맙다는 뜻을 밝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김정수 감독은 자기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흠……. 어쩌면 그게 좋은 선택일지도…….’

 

현석은 그 후에도 탁월한 수비와 타격 능력을 선보였고, 강릉 레빗스 2군 팀은 그의 활약에 힘입어 울진 크랩스 2군 팀을 8:4로 제압했다.

 

비록 관중 한 명도 없는 2군간 경기였지만, 선수들은 오늘의 활약이 밝은 미래를 보장하길 희망하며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다만 현석은 여전히 앞날을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일단 잘하긴 했지만, 상황이 그리 달라지진 않겠지. 이미 퇴물로 낙인찍혀 버렸으니……. 뭐, 아예 못해 버리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때, 한 코치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이, 현석! 감독님이 부르신다.”

 

“예? 무슨 일로……?”

 

“그거야 나도 모르지. 어서 감독실에 가봐.”

 

“아, 예…….”

 

현석은 감독의 갑작스런 호출에 잔뜩 긴장한 채 감독실로 향했다. 이윽고 감독실에 들어선 그는 의자에 앉아있는 감독을 향해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인사했다.

 

“감독님, 부르셨습니까?”

 

김정수 감독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네게 할 말이 있어 불렀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인 뒤,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칭찬했다.

 

“현석아, 정말 잘했다. 너 덕분에 오늘 경기를 멋지게 이길 수 있었어.”

 

현석은 무척 쑥쓰러워하며 겸손하게 답했다.

 

“아, 아닙니다. 감독님께서 저희를 잘 이끌어주신 덕분이죠.”

 

김정수 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내가 무슨 힘이 있어 경기를 좌지우지하겠니? 경기를 이끄는 건 너희들인데. 그 중에서도 오늘 넌 정말 잘했어. 동엽이가 부상으로 빠졌을 땐 낙담했는데, 네가 공백을 잘 메꿔줬어.

 

무엇보다, 2루성 타구를 친 뒤, 2루에서 멈추지않고 3루까지 과감하게 달린 게 무척 인상적이었단다. 그 찰나의 순간에 3루에서 살 수 있다고 판단하다니, 참으로 훌륭하구나!”

 

현석은 얼굴을 붉히며 겸양했다.

 

“벼, 별 말씀을 다하세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김정수 감독은 그런 현석을 흐뭇하게 바라보더니,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방금 의료진이 말하길, 동엽이가 4주간 재활훈련을 받아야 한다는구나. 네가 그동안 녀석을 대신해야겠다.”

 

현석은 그 말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답했다.

 

“예, 감독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수 감독은 현석의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했다.

 

“앞으로 잘해봐라. 그러면 언젠가 기회가 주어질 거다.”

 

“기회…… 라고요?”

 

“그래. 언젠가 1군으로 승격해서 다시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지도 모르지.”

 

현석은 그 말에 깜짝 놀라며 반문했다.

 

“하지만 전 올해 계약이 끝나면 팀을 떠나기로 예정되지 않았나요?”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김정수 감독은 한결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난 개인적으로 널 이대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거든. 내가 보기에, 넌 아직 잠재력이 남아 있어. 그동안 운이 좋지 않았을 뿐, 한 번 기회가 주어지면 분명 날아오를 거야. 난 그걸 믿고 보드진에게 네게 기회를 좀더 달라고 사정하고 있단다.”

 

“가, 감독님…….”

 

“하지만 네가 잘해야 기회가 주어질 거다. 네가 아무것도 못해서야 내 호소가 먹힐 리 없겠지. 앞으로 최선을 다해봐라. 그러면 보드진이 마음을 달리 먹고 네게 기회를 줄 지도 모른다.

 

설령 끝내 기회를 주지 않아서 팀을 나가게 되더라도, 네가 2군에서 맹활약하는 걸 본 타팀이 계약을 제시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 마음 굳건히 먹도록 해라.”

 

현석은 김정수 감독의 배려에 감격한 나머지 눈물을 살짝 머금으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정말 고맙습니다, 감독님! 반드시 주어진 기회를 잘 잡아 성공해보이겠습니다!”

 

김정수 감독은 그런 현석의 등을 두드리며 재차 격려했다.

 

“현석아, 힘내라. 난 널 끝까지 믿겠다…….”

 

감독과의 면담을 마친 뒤, 현석은 감독실 문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그는 한동안 마음을 추스린 뒤, 감독실을 향해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히며 감사인사를 건넸다.

 

“감독님, 제게 기회를 다시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성공해서 은혜를 갚겠습니다.”

 

현석이 프로에 데뷔한 이래 6년 동안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을 때, 대다수는 등을 돌렸지만 오직 김정수 2군 감독만이 그를 변함없이 지지했다.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호통을 치며, 어떻게든 그를 살려보고자 노력했다.

 

현석이 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강릉 레빗스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건 팀내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김정수 감독의 굳건한 지지 덕분이었다. 그러나 현석은 6년간 실패만 거듭했고, 구단은 결국 그에게 미련을 접고 방출을 잠정 결정했다.

 

구단의 결정을 현석에게 알렸을 때, 김정수 감독의 표정은 무척 심란했다. 오래도록 함께 하며 정이 쌓일 대로 쌓였을 제자가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것이 무척 아쉽고 씁쓸했으리라. 현석 역시 자기를 이토록 믿어준 그에게 보답하지 못해 무척 죄송스러웠다.

 

이제 이동엽 선수가 4주간 빠지게 되면서, 그에게 절대로 주어지지 않을 듯했던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어떻게든 이 기회를 잘 살려 구단의 관심을 받아 1군에 승격해야 했다.

 

‘감독님을 또다시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다음에도 오늘처럼 잘해야 해. 그렇다면 그 사람을 다시 만나보는 수밖에…….’

 

그날 밤, 현석은 폐가 지하실을 재차 찾아가서 태민과 면담했다. 현석과 태민은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에 앉은 채 서로를 바라봤다. 태민은 현석으로부터 그날 있었던 일을 전해들은 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거 보십시오! 제가 뭐랬습니까? 제 약을 복용하면 분명 잘하실 거라고 했잖습니까?”

 

현석은 여전히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그게 정말 약 때문인가요? 단지 오늘이 운수 좋은 날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자 태민은 손가락 하나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괜한 의심하지 마십시오.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을 텐데요? 몸이 전보다 가볍다던지, 순간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던지 같은…….’

 

현석은 그 말에 움찔하며 시인했다.

 

“그, 그건……. 확실히 그러긴 했는데…….”

 

태민은 방긋 웃으며 답했다.

 

“그게 바로 약효가 드러났다는 증거입니다. 앞으로 약을 꾸준히 복용하신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현석은 여전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는지, 얼굴을 흐리며 말했다.

 

“그, 그렇지만 저는 프로 선수입니다. 약효가 있다는 게 사실이라고 해도……. 약에 의존할 수는…….”

 

태민은 안경을 치켜세우며 냉랭한 어투로 물었다.

 

“그러면 지금 여기 왜 앉아있는 거죠?”

 

“그, 그건…….”

 

현석은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푹 숙였고, 태민은 한결 엄격해진 어투로 나무랐다.

 

“태도를 확실히 해주십시오. 하실 겁니까, 아니면 그만두실 겁니까? 이 자리에서 분명히 정해두셔야겠습니다.”

 

현석은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숙고하다가 고개를 치켜들며 물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그 ‘마법의 약’은 정말 걸리지 않는 겁니까?”

 

태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칼슘과 비슷한 성분이라서 눈에 띄지도 않고, 금지약물 품목에도 없습니다.”

 

현석은 여전히 불안했는지 엄지손가락 손톱을 입에 물며 식은 땀을 흘렸다.

 

‘하지만 누군가가 절 의심한다면……. 어찌해야 할지…….”

 

태민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특별히 현석 씨께 귀한 선물을 드리지요.”

 

‘무, 무엇을 말이죠?”

 

태민은 옆에 있던 조수 민정을 돌아보며 말했다.

 

‘민정아, 오늘부터 현석 씨 주변에 있거라. 현석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연락하도록.”

 

민정은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주인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현석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미, 민정 씨가 선물이라고요? 하지만 생판 남이었던 분과 가깝게 지내면 주변의 의심을 살 텐데요.”

 

태민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일개 ‘팬’으로 위장할 테니까요.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민정이와 의논하십시오.”

 

현석은 신음을 흘리며 고민에 잠겼고, 태민은 그런 현석에게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

 

“중요한 건 현석 씨의 마음가짐입니다. 이제 저와 거래할 마음을 굳히셨는지요?”

 

“거래?”

 

“예. 현석 씨는 제가 주는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며 승승장구하십시오. 저는 그런 현석 씨를 귀중한 연구 자료를 쓰겠습니다. 어떠신가요? 모두에게 win-win인 거래 아닐까요?”

 

“그 연구 자료는 무엇에 쓰실려고……?”

 

“전에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소한 질병에 걸리지 않고, 신체 능력과 탁월한 지능을 갖춘 신인류를 창조할 연구 말입니다. 전 반드시 이 꿈을 이루고 말 겁니다.”

 

“그걸 위해 제게 약을 먹이시는 건가요?”

 

“예. 인류를 위해서 감수해주십시오. 물론 지금 당장은 비밀을 준수해야겠지만, 훗날 모든 게 실현되면, 다들 현석 씨에게 고마워할 겁니다.”

 

현석은 태민의 거듭된 권유에 한동안 고민하다가, 입술을 꽉 깨물고 태민을 똑바로 바라보며 결심을 밝혔다.

 

“알겠습니다. 태민 씨 말씀대로 하지요. 대신 문제가 생기면 책임지세요.”

 

태민은 안경을 손가락 하나로 치켜 세우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물론입니다. 그러면 거래 성립이군요.”

 

그리하여 현석은 태민과 한 편이 되어, 그로부터 약물을 공급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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