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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약]

8화 불안과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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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간(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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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약’ 복용을 재개한 후, 며칠간 주춤했던 현석은 다시 탁월한 활약을 선보였다. 현석이 친 야구공은 십중팔구 장타로 연결되었고, 강릉 레빗스는 그 덕분에 대량 득점을 거둘 수 있었다.

 

현석의 방망이가 어찌나 매서운지, 상대 투수들은 어느덧 그와 정면대결하는 걸 꺼렸다. 유인구로 일관하며 현석이 속아 넘어가길 유도하기도 했고, 아예 대놓고 명백히 빠지는 볼만 던져서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작전 역시 현석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빠지는 유인구를 대부분 걸러냈고, 볼넷으로 출루한 뒤에는 일부러 베이스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도루하려 한다는 의도를 대놓고 표출해 상대 투수에게 부담감을 가득 안겨줬다.

 

투수들은 그런 그를 잡기 위해 1루로 공을 연이어 던졌지만, 현석이 재빨리 돌아와서 좀처럼 잡지 못했다. 현석은 투수들의 집중 견제를 받는 와중에도 빈틈을 귀신같이 포착해 도루를 시도했는데, 12번 시도하여 단 한 번 빼고 전부 성공했다.

 

현석은 수비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자기에게 날라온 공은 대부분 잡아냈고, 웬만해선 잡기 어렵겠다 싶은 공도 몸을 던져서 잡은 뒤 재빨리 일어나 1루로 송구해 주자를 잡아내기도 했다.

 

다만 의욕이 과했는지 공을 너무 세게 던지는 바람에 덧아웃이나 관중석으로 들어가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현석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동료들에게 사과했지만, 그가 워낙 잘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그럴 수도 있는 거니 사과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렇듯 현석이 맹활약하자, 그를 지켜보던 팀동료들 역시 기세를 한껏 끌어올렸고, 자연히 강릉 레빗스의 성적은 갈수록 향상되었다. 현석이 1군에 승격하기 직전 꼴지에 근접했던 레빗스는 이젠 상위권은 물론이고 1위와 경기차를 5경기 이내로 좁힐 정도로 성장했다.

 

팬들 역시 현석에게 열띤 응원을 보냈다. 6년 동안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그를 퇴물 취급했던 그들은 이젠 현석이 타석에 설 때마다 “박현석 홈런!”을 외쳤고, 현석이 멋진 수비를 선보일 때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보드진의 입장이 난감해졌다. 그들은 당초 이번 시즌이 끝난 뒤 현석을 내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팀의 주축 유격수로 성장할 것이라 기대했던 이동엽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현석이 대활약하며 팀의 승승장구를 이끌고 있다.

 

현재 팀 내에서 방망이가 가장 뜨겁고 수비를 제일 잘하는 현석을 방출하는 건 여러모로 무리였다. 팬들의 반발은 극심할 테고, 현석을 인정하는 선수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타팀들이 그를 영입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실제로 트레이드를 문의하는 팀이 몇몇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방출해버리면, 그들은 “공짜로 줘서 감사합니다”라며 냉큼 데려가버릴 게 뻔했다.

 

“아무래도 계획을 변경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대로 방출하기엔 너무 아깝고, 반발도 극심할 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6년간 삽질만 하다가 계약이 끝날 즈음에서야 잘하다니 영 탐탁치 않지만, 그래도 잡는 편이 낫겠죠.”

 

“이미 모기업으로부터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계약 연장을 논의해 보죠.”

 

이리하여 현석과 재계약하기로 방침을 변경한 보드진은 경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귀가를 준비하던 그에게 직원을 보내 계약 논의를 의뢰했다.

 

“현석 씨는 그동안 2군에 있던 시기가 많아서 FA(Free Agent. 선수가 자율적으로 팀과 계약할 수 있는 제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대신, 연봉을 지금의 2배 이상으로 인상하겠습니다. 계약에 동의하십니까?”

 

현석은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직원이 제시한 계약 동의서를 바라봤다. 천덕꾸러기 취급받으며 2군에 썩히던 그가 이젠 중요 선수로 취급되어 재계약을 제시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섣불리 결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최대한 정중하게 답했다.

 

“재계약을 의뢰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만 가족과 의논해야 해서 지금 당장 말씀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의사를 밝히겠으니, 부디 기다려 주십시오.”

 

그 후 집에 돌아온 현석은 아니 예린의 환대를 받았다.

 

“여보,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당신 활약상 TV로 잘 보고 있어요. 요즘 잘나가는 것 같던데요?”

 

“아니, 뭐……. 나야 프로 선수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야.”

 

“그래도 요즘 당신처럼 잘하는 선수는 드물걸요? 다들 당신을 주목하고 있어요. 심지어 오늘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당신을 취재하겠다는데요?”

 

아내의 칭찬에 머리를 긁적이며 쑥쓰러워하던 현석은 ‘취재’라는 말을 듣자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취, 취재? 지금 취재라고 했어?”

 

“예. ‘대학 야구 최고의 선수의 부활’이라는 주제로 방송할 거래요. 기자 분들이 며칠 동안 당신과 함께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한다는데요?”

 

“호, 혹시 받아들였어?”

 

“아뇨. 남편과 의논해보고 말씀드리겠다고 했죠.”

 

현석은 굳어진 얼굴로 어리둥절해하는 아내에게 단호히 말했다.

 

“절대로 받아들이지 마. 절대로!”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그 쪽에서 출연료를 두둑하게 준다고 했는데요.”

 

“기자라는 놈들이 내게 어떤 짓을 했는지 몰라서 그래? 그놈들은 내가 못하는 걸 비판하는 걸 넘어서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았다고. 심지어 이 짓까지 했잖아!”

 

현석은 서랍장을 벌컥 열고는 그 안에 들어있던 신문 한 장을 꺼내 아내 앞에 들이밀었다.

 

“이거 봐! 그 새끼들이 뭐라 지껄였는지 보라고! ‘7억에 달하는 계약금을 받아챙겼지만 7천만원짜리 값도 못하는 희대의 먹튀’, ‘팬들 심장에 못을 박은 최악의 선수’, ‘선수로서 자질이 결여된 선수’……. 이딴 표현을 마구 써댔잖아!”

 

예은은 신문 기사를 한손으로 치우고 인상을 찌푸리며 반론했다.

 

“다 지난 일이예요. 이제 당신이 잘하면, 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찬사를 보낼 걸요?”

 

현석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대꾸했다.

 

“그러겠지. 하지만 난 말 바꾸는 걸 아무렇지 않게 하는 놈들이 싫어. 그런 놈들과 상종하기도 싫다고! 그러니 다시는 그딴 놈들과 연락하지 마. 알겠어?”

 

예은은 잔뜩 흥분한 남편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충고했다.

 

“당신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기자들과 척져봐야 좋을 게 없잖아요? 당신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나오면, 기자들은 분명 당신을 물어뜯는 기사를 쓸 거예요. 그럼 당신 이미지가 안 좋아지지 않겠어요?”

 

현석은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아무튼 기자들과 상종할 일 없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예은은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남편이 답답했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푸념하듯 중얼거렸다.

 

“그쪽에서 적어도 200은 넘게 주겠다고 했는데……. 아깝다, 아까워…….”

 

아내가 탄식하며 자리를 떠난 뒤, 현석은 가슴을 쓸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예은이가 믿어줘서 다행이다. 방송을 강행하겠다고 나올까 걱정했는데…….”

 

사실 그가 취재를 극구 거부한 이유는 기자를 불신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태민으로부터 신체 및 두뇌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약물을 제공받는 게 방송으로 폭로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입 단속 잘하면 상관없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기자들을 극도로 불신한 현석은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다. 자기가 아무리 입 단속을 철저히 한다고 해도, 그들은 어떻게든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내려 사활을 걸 테고, 그만의 비밀이 폭로될 우려가 컸다.

 

‘앞으로 어떤 제의를 받더라도 절대로 방송에 출연하지도, 인터뷰하지도 말아야지. 괜히 나갔다가 실체가 까발려지면 곤란해…….’

 

현석은 이후에도 기자들과 가능한 한 접촉하지 않으려 했다. 경기 후 MVP에 뽑혀서 인터뷰할 때는 당연히 나섰지만, 그외에는 인터뷰를 일절 거부하고 방송 출연 제의도 뿌리쳤다.

 

강릉 레빗스의 주전 우익수를 맡고 있던 이대은은 절친한 친구인 현석의 이같은 행보를 이상하게 여기고 물어봤다.

 

“현석아, 왜 그렇게까지 거부하는 거니? 방송에 나가는 게 딱히 나쁠 건 없을 거 같은데.”

 

현석은 대은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는 너는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니?”

 

대은은 멋쩍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응. 딱 세번 예능 프로에 출연해서 무난하게 했지. 그 후엔 별다른 제의가 없었지만…….”

 

현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기 뜻을 밝혔다.

 

“난 너처럼 여유롭게 지낼 처지가 못 돼. 넌 자리를 보장받아서 취미삼아 다른 걸 할 수 있지만, 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고. 그러니 방송 따위에 출연할 여유가 있을 리 없지.”

 

대은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래도 다들 주목하고 있을 때 돈을 최대한 확보해두는 편이 낫지 않니?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지.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잖아.”

 

그러나 현석은 친구의 조언을 끝내 따르지 않았다. 아니, 따르지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리라. 그는 방송에 출연했다가 약점을 잡힐까 전전긍긍했으니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세상 이치지. 게다가 난 프로 선수로서 부적절한 짓을 하고 있잖아. 절대로 들키면 안 돼. 절대로…….’

 

이렇듯 현석은 언제라도 진실이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항상 품었다. 그의 이같은 심정은 무작위로 선정하는 도핑테스트 대상에 뽑혔을 때 드러났다. 그는 자신을 검사하려는 직원들을 향해 항의했다.

 

“이제 막 경기를 마치고 몸 씻으려고 하는데, 도핑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요? 몸 다 씼고 나서 하면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지금 당장 받으셔야 합니다.”

 

“아니, 사람을 왜 이리 몰아가세요? 제가 약이라도 복용한 거라 의심하는 거예요? 전 그딴 짓을 하는 놈이 아니라고요!”

 

동료들이 왜 이리 까칠하게 구느냐며 만류했지만, 현석은 샤워하고 나서 도핑 테스트를 받겠다고 고집했다.

 

“전 억지로 테스트 받고 싶지 않아요. 이건 인권 침해라고요! 여러분도 남정네가 풀풀 풍기는 냄새를 맡고 싶지 않잖아요? 그러니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기다리세요. 5분 안에 끝내고 올 테니까요.”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진 끝에, 현석의 뜻대로 샤워를 마친 뒤 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후 진행된 테스트 결과, 현석의 체내엔 금지 약물이 검출되지 않아 ‘음성 판정’을 받았다. 다만 한 조사관은 의문을 제기했다.

 

“혈중 농도를 살펴보니 칼슘과 유사한 성분이 다량 검출되었더군요. 혹시 칼슘이 섞인 약재를 드십니까?”

 

현석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태연하게 답했다.

 

“글쎄요……. 요즘 우유와 멸치를 자주 먹었는데, 그것 때문일 걸지도 모르죠. 약재는 딱히 먹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로 많이 나올리가 없는데…….”

 

“아무튼 음성 반응이 나왔으니 된 거 아닌가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현석은 더 의심받을까봐 급히 자리를 떠나면서 속으로 읊조렸다.

 

‘후……. 도핑 테스트 받을 때 양성 반응 나올까 겁났는데, 다행히 걸리지 않았구나. 과연 태민 씨 말 대로야…….’

 

그러나 현석은 다른 방면에서 공격받았다. 인터뷰 및취재 제의를 일절 거부하는 현석에게 불만을 품던 몇몇 기자들이 현석이 도핑 테스트를 미루려 했다는 이야기를 접하자마자 기사에 올려 버린 것이다.

 

그들은 현석이 굳이 샤워한 후에 테스트를 받겠다고 나온 건 다른 의도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심지어 샤워하면서 소지하고 있던 금지약물을 하수구에 버렸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전부 빌어먹을 헛소리입니다!”

 

현석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 문제에 관해 질문한 리포터를 험악하게 노려보며 단호히 외쳤다.

 

“그들은 세상의 이목을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자극적인 소재를 꺼내든 거예요. 어떠한 증거도 없이 말이죠! 그런 가짜 뉴스에 속지 마십시오. 검사 결과는 음성이고, 어떠한 문제도 없습니다.”

 

다만 테스트를 받는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무례를 범했던 건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왜 그랬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날은 제가 슬라이딩을 여러 번 해서 온몸이 흙먼지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씻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죠.

 

그러던 중에 도핑 테스트 대상으로 뽑혔으니 당장 가자고 하길래 그만 발끈해버렸습니다. 그들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앞으로는 이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야구 리그 협회는 현석에게 주의를 줬고, 강릉 레빗스 구단은 현석에게 벌금 10만원을 매기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온라인에서는 현석이 수상하다는 류의 글이 몇 개 올라왔지만, 이렇다할 증거를 제시하지 않아 별다른 관심도 못 받고 묻혔다.

 

하지만 현석은 이 일로 의심을 샀을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불안에 떨었다. 그는 이전과는 달리 잘 웃지 않았고, 누군가 자기를 엿본다고 의심했는지 주위를 두러번거리곤 했다. 이에 동료들이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을 꺼렸다.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마. 그저 답답해서 그런 것뿐이야.”

 

“답답하다고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 별일 아니라니까? 아주 사소한 일이니까 신경쓰지 마!”

 

이렇듯 현석이 매일 불안해하던 어느 날, 강릉 레빗스의 미래를 책임질 기대주였던 이동엽이 4주간의 재활을 마치고 팀에 복귀했다. 선수들은 파티를 열어 동엽을 열렬히 환영했다.

 

“동엽아, 퇴원 축하한다! 너 정말 보고 싶었어.”

 

“그래, 임마! 너 때문에 얼마나 걱정됐는지 아니? 다시는 다치지 마. 알았지?”

 

“발목 관리 잘해. 또 다치면 큰일날 테니까. 너무 열심히 하다가 다칠 수 있으니까 설렁설렁 하라고!”

 

동엽은 자기를 환대하는 선배들에게 일일이 허리를 굽히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팀에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 부상으로 빠져서 부담만 안겨드린 것 같아 죄송했습니다. 그런 저를 이렇게 따뜻하게 맞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수들은 그런 동엽을 귀여워하며 살갑게 대했지만, 딱 한 명은 거리를 두고 벽에 등을 기댄 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다름아닌 현석이었다.

 

‘동엽……. 저 녀석이 드디어 돌아왔군…….’

 

2군에 있을 때는 동엽 때문에 출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처지에 원망 많이 했던 그였지만, 이 시점에서는 그에게 자기 자리를 뺏길 거라는 불안감을 품을 까닭이 없었다. 왜냐하면 최병도 감독이 전날 현석을 불러서 다음과 같은 언질을 했기 때문이다.

 

“내일 동엽이가 복귀한다. 하지만 부상 여파가 있을 테고 네가 워낙 잘해주고 있어서, 그 녀석은 후보로 기용될 예정이야. 선배로서 잘 챙겨주도록.”

 

감독이 대놓고 말한 이상, 당분간 그의 자리가 위협받을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석은 동엽을 껄끄럽게 여겼다.

 

‘저 녀석, 분명 나를 원망하고 있겠지. 자기가 유격수로 뛰어야 하는데, 나 때문에 벤치에 박혀 지낼 테니 말이야. 마음 속으로는 나를 밀어낼 기회를 노리고 있겠지…….’

 

그러던 중, 동엽이 현석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현석은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며 외면했지만, 동엽은 그런 그를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선배님의 활약상 TV로 잘 보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던데요?”

 

“……. 병원에서 TV를 틀어주니?”

 

“네! 우리 팀이 잘 나가고 있나 궁금해서 의사 선생님을 졸라서 TV를 틀게 했죠. 하위권을 맴돌던 우리 팀이 선두를 바라보게 되다니,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아요!”

 

현석은 잠시 동엽을 어찌 대해야 할지 난감해 하다가 손을 어색하게 내밀었다. 그러자 동엽은 현석의 손을 꽉 쥐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재차 감사 인사를 건넸다.

 

“선배님! 정말 고맙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어요.”

 

현석은 뜻밖의 이야기에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덕분에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고?”

 

동엽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선배님! 제가 처음 불의의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갔을 때, 우리 팀 걱정 많이 했어요. 제가 유격수로서 한 몫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말이에요.

 

다행히 선배님이 대단한 활약을 해줘서 팀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죠. 덕분에 마음 편히 재활에 전념할 수 있었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현석은 활짝 미소지으며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는 동엽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맑고 반짝이는 두 눈은 그의 감사 인사가 진심에서 우러나온다는 걸 입증하는 듯했다.

 

“…… 으흠! 뭐, 그렇게 생각했다니 다행이군. 앞으로 별 탈 없이 잘 지내도록.”

 

현석이 머쓱한 감정을 느끼며 가벼운 덕담을 건네자, 동엽은 그의 손을 힘차게 흔들며 화답했다.

 

“물론입니다, 선배님! 앞으로 좋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동엽이 이렇듯 자기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가르침을 청하기까지 하자, 현석의 마음 한 구석에서 새로운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는 그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끝내 그러지 못하게 되자 급히 자리를 떠났다.

 

“서, 선배님! 어디 가세요?”

 

동엽이 급히 불렀지만, 현석은 대답도 않고 파티장을 곧장 떠났다. 그 후 공원에 들어간 그는 벤치에 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잡아뜯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저 좋은 아이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의 마음속에서 생겨난 새로운 감정. 그것은 바로 죄책감이었다. 탁월한 기량에 훌륭한 인성까지 갖춰 창창한 미래가 예정된 젊은이를 밀어내기 위해, 그는 태민과 결탁하여 ‘마법의 약’을 복용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신체 및 판단 능력 향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그 약을 먹는 건 프로 선수로서 절대 해서는 안될 범죄였지만, 어떻게든 동엽을 밀어내고 팀내 입지를 확보하고 싶었기에 그 길을 택하고 말았다.

 

그 결과, 현석은 성공가도를 달리며 주전 유격수로 발탁되었다. 반면에 동엽은 발목이 돌아가버리는 불의의 부상을 당해 병원에 실려갔고, 퇴원 후에는 현석의 백업 노릇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 모든 게 약물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얻은 것이었으니, 누가 봐도 부당한 결과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 좋은 동엽은 자기가 빠진 동안 탁월한 활약을 해줘 공백을 훌륭히 메꿔준 현석에게 진심으로 고마워 했다.

 

‘나는 그 녀석을 질투했고, 내게 기회가 돌아가기 위해 실패하길 기도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녀석은 내가 잘 나가는 걸 진심으로 기뻐하고, 재활에 마음 편히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며 고마워하고 있다. 내가 녀석의 앞길을 부당하게 가로막은 건 상상도 못하고…….’

 

현석은 마음 속에서 일렁이는 죄책감을 어떻게든 억누르려 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되자 편의점에서 사온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나 술기운으로도 극복이 안 되는지, 그는 울음을 터트렸다.

 

“크흐흑……. 동엽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렇게 한동안 흐느끼던 그는 손을 덜덜 떨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답이 없었어. 도저히 방도가 없었다고……. 부디 날 용서해줘. 제발 용서해 줘…….”

 

그렇게 현석은 공원 내 벤치에 앉아서 한참 동안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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