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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약]

13화 깔깔이 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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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깔깔이 탐정

 

강릉 시내 경찰서에서 300보 거리에 위치한 ‘얼큰 국밥집’. 30여 년간 국밥을 전문적으로 판매한 전통 음식점이지만, 그 외에는 주목할 만한 게 없는 평범한 곳이었다.

 

다만 경찰서와 가깝고 가격도 싼 편이었기 때문에, 형사들은 종종 이곳에 들러서 배를 채우곤 했다. 특히 베테랑 형사 이기수는 강릉에 전출된 이래 거의 매일 저녁 이 집에 들려서 끼니를 챙겼다.

 

국밥집 주인 최씨는 단골 손님인 이기수를 극진하게 대접했다. 이기수를 위한 전용 좌석을 별도로 마련했고, 국밥의 양을 많이 주고 가격을 특별히 깎아주는 등 여러 편의를 제공했다.

 

또한 이기수와 비슷한 연배이기도 해서, 한산할 때면 그의 옆자리에 앉아서 소주를 나누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매우 강직하고 예민한 성격이라서 제대로 된 인간관계가 없다시피한 그였지만, 자기를 친절히 대해주는 최씨 만큼은 너그럽게 대했다.

 

가끔 국밥 맛이 괜찮다며 칭찬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꽁꽁 숨겨뒀던 진심을 그에게 털어놓곤 했다. 이기수는 “요즘 신참 형사들은 영 믿음직하지 않다”는 식으로 푸념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래도 형사님이 있어서 다행입니다”라며 살살 달랬다.

 

이렇듯 ‘얼큰 국밥집’은 매일 범죄 사건 수사에 몰두하며 과중한 스트레스를 떠안은 그를 편안하게 해줄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는 가끔 부하들에게 여기서 식사하자고 권하기도 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떡볶이니, 치킨이니, 햄버거니 같은 것만 먹지 국밥은 쳐다도 보지 않아.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국밥을 먹어야지 않겠나? 내가 국밥을 아주 잘하는 집을 알고 있으니 따라오도록!”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평소처럼 퇴근 후 국밥집에 들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식사하려고 들린 게 아니었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를 맞이하는 최씨에게 진지한 얼굴로 요청했다.

 

“방을 따로 마련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누구도 엿볼 수 없고, 엿들을 수도 없는 방 말입니다.”

 

최씨는 한편으로는 놀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느끼며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혹시 수사와 관련이 있나요?”

 

이기수는 살짝 미소지으며 답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남들이 엿들으면 곤란하다는 것만 말씀드리지요.”

 

최씨는 곧바로 이기수를 별실로 안내하고, 자물쇠와 열쇠를 건넸다.

 

“안에서 걸어 잠그세요. 다른 사람은 일절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혹시 일행 분이 있나요?”

 

“예. 한 명 있습니다.”

 

“그럼 제가 그 분을 안내해드리지요. 이거, 이거……. 형사님의 수사에 도움이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최씨가 흥분한 나머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자, 이기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거창한 일은 아닙니다. 그냥 지인과 얘기하는 것뿐이라서요.”

 

“그래도 중요한 이야기를 하시는 건 분명하겠죠? 이렇게까지 숨기시는 걸 보면 말이예요. 형사님에게 중요한 이야기면 분명 수사일 테고요. 그렇죠?”

 

“아, 네……. 뭐, 그렇습니다만…….”

 

최씨는 양손을 비비며 흥분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스릴러나 첩보 영화에서나 있을 줄 알았던 일이 현실이 되다니, 정말 꿈을 꾸는 것 같군요! 범죄자를 잡기 위한 비밀 회동이라니! 누구도 감히 방해하지 못하게 막을테니 안심하세요!”

 

이기수는 잔뜩 흥분한 최씨를 멍하니 바라보며 속으로 읊조렸다.

 

‘이것 참……. 저렇게 흥분해 하면 오히려 더욱 주목받을 텐데……. 다음 번엔 다른 데서 만나야겠어…….’

 

그후 이기수는 별실에 들어갔고, 최씨는 계산대 앞에서 손님을 맞이하면서도 이기수의 ‘상대’가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영화에서는 멋진 양복을 차려입고 선글라스를 쓴 요원이 주인공과 접촉하던데……. 이번에도 그럴까? 이번 일이 가게 홍보에 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30분 후, 한 사내가 가게 안에 들러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최씨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기수 형사 여기 있습니까?”

 

“네. 지금 별실에 계십니다. 혹시 그 분을 만나시러 오신 겁니까?”

 

“예. 그 사람이 절 불러서요.”

 

최씨는 사내의 인상착의를 훑어 봤다. 더벅 머리에 멍한 눈빛, 제대로 자르지 않아 듬성듬성한 수염, 깔깔이를 뒤집어 입고 바지는 헐렁했으며, 배는 볼록 튀어나왔다.

 

‘뭐야? 이 사람이 형사님과 대면할 사람이야?’

 

최씨는 기대했던 것과는 영 탄판인 사내의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렇지만 그걸 얼굴에 드러내지 않고, ‘접대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제가 별실까지 안내해 드리지요.”

 

사내는 머리를 긁으며 거절했다.

 

“뭐, 됐습니다. 음식점 주인이신 거 같은데, 굳이 절 데려가실 필요 없습니다. 별실이 어딘지만 알려주세요. 제 발로 가겠습니다.”

 

“그, 그래도 형사님과 중요한 이야기를 하실 분인데 어찌…….”

 

“상관없습니다. 어디 있는지만 가르쳐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사내가 끝까지 안내를 거부하자, 최씨는 어쩔 수 없이 별실의 위치를 알려주는 걸로 끝내야 했다. 그는 머리를 계속 긁으며 걸어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내심 의문을 표했다.

 

‘저 사람이 정말로 형사님과 중요한 이야기를 할 사람인가? 아무리 봐도 그럴 사람으론 안 보이는데…….’

 

한편, 사내는 국밥집 주인이 가르쳐준 별실로 곧장 걸어간 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삼촌, 저 왔어요. 어서 문 열어주세요.”

 

잠시 후,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이기수가 머리를 쏙 내밀며 조용히 말했다.

 

“얼른 들어와라. 딴 놈들이 엿볼까 걱정된다.”

 

사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되물었다.

 

“뭘 그리 호들갑 떠세요? 그렇게 유난을 떨면 오히려 더 주목받겠어요.”

 

“잔말 말고 빨리 들어와!”

 

“예, 예~. 분부대로 합죠.”

 

사내는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방안에 들어왔다. 이기수는 즉시 문을 닫고 자물쇠로 걸어잠근 뒤, 주위를 샅샅이 살피며 도청 장치가 있는지 확인했다.

 

“삼촌, 대체 왜 그러세요? 이 국밥집에 도청 장치가 어디 있겠어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지. 이 집 주인은 믿을만한 사람이지만, 누군가가 엿들으려 들 수도 있으니까.”

 

이기수는 말을 마친 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사내는 바닥에 털석 주저앉은 뒤 태평하게 말했다.

 

“흠~. 꽤 중요한 얘기를 하시나 보네요. 그치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먼저 배부터 채우고 나서 얘기해요.”

 

“뭐? 넌 이 와중에 밥부터 찾니?”

 

“아, 다 먹고 살려고 이러는 거 아니겠어요? 국밥 다 식기 전에 어서 먹자고요!”

 

그후 사내는 눈앞에 놓인 국밥을 먹으면서 연신 감탄사를 늘어놨다.

 

“음~! 정말 맛있네요! 특히 국물 맛이 끝내줘요. 삼촌이 단골로 있을 만 하네요.”

 

이기수는 그런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후……. 나이를 서른 넘게 먹어놓고 저리도 철이 없으니…….’

 

사내의 이름은 고명석. 이기수 형사의 외조카로, ‘탐정’을 자칭하지만 실제로는 별다른 직업이 없이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인물이다. 부모님이 일찌감치 돌아가신 뒤, 할머니와 한 집에서 살면서 이기수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무척 총명하여 한 번 배운 걸 절대로 까먹지 않았고, 추리 분야에 관심이 많아 추리 소설을 즐겨 읽고 범죄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영화, 드라마 등을 즐겨 봤다.

 

이기수는 그런 그가 자기 뒤를 이어 어엿한 형사가 되리라 기대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장성한 그는 다니던 대학을 도중에 그만둔 뒤,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며 컴퓨터나 하고 햄버거, 피자 등으로 끼니를 떼울 뿐 직장을 구하려 애쓰지 않았다.

 

이기수는 종종 “정신 차리고 취업해라” 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들은척도 하지 않고 매일 백수로 지냈다. 이기수는 그런 조카에게 크게 실망해, 한때는 관계를 끊어버릴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곧 한없이 게으른 조카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날 삼촌이 맡은 사건 파일을 살펴본 고명석은 곧바로 사건의 전말을 파악했다. 이기수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나중에 조카 말대로 되자 인식이 바뀌었다.

 

‘이 녀석, 무척 게으르지만 머리 하나는 대단히 좋군. 잘만 하면 도움이 되겠어…….’

 

그후 두 사람은 일종의 ‘거래’를 맺었다. 즉, 이기수가 용돈을 지급해주고, 고명석이 장기간 해결되지 않은 사건 파일을 살펴보고 추리력을 발휘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이기수는 여러 난해한 사건을 해결하여 범인을 체포할 수 있었고, 덕분에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한편, 고명석은 삼촌이 용돈을 두둑이 준 덕분에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듯 조카의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그래도 자기는 목숨을 걸고 범죄 현장에 뛰어드는데 조카는 빈둥빈둥 노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기수는 “아르바이트라도 해라”라고 채근하곤 했다.

 

고명석은 채근을 이기지 못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몇 번 했지만, 몇 달도 안 되어 그만두기 일쑤였다. 이기수는 한 직장에 정착하지 못하는 조카를 답답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했다. 그는 종종 지인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녀석 얼굴만 보면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지는 것 같아. 녀석은 마음만 다잡으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큰일을 할만한 역량이 있는데, 인터넷을 뒤적이고 배를 박박 긁기만 하니……. 정말이지 그 좋은 머리가 아까워…….”

 

반면에, 고명석 역시 삼촌을 가엾게 여겼다. 그는 온라인 채팅에서 삼촌 얘기를 하면서, 종종 다음과 같이 평하곤 했다.

 

“삼촌은 그저 일 밖에 몰라. 언제, 어디서 뭘하든 항상 수사 생각만 하지. 하나 뿐인 인생 그렇게 힘들게 살다 간다니 너무 불쌍해. 나처럼 살면 더 할 나위 없이 편할 텐데.”

 

이렇듯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한 가지 사안만은 의견이 일치했다. 바로 범죄자를 발본색원하여 피해자의 원통함을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매사에 진지하게 임하는 이기수야 말할 필요 없고, 평소 맘 편히 지내는 고명석도 수사에 참여할 때만큼은 매우 진지했다. 이기수는 이 점만큼은 조카를 신뢰해서, 비밀리에 의논할 상대로 그를 점찍었다.

 

“……. 다 먹었냐?”

 

한동안 조카가 식사를 마치길 기다리던 이기수가 슬쩍 물어봤다. 고명석은 밥 한공기를 싹 비우고 배를 두들기며 답했다.

 

“예, 삼촌.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그래. 언제봐도 먹성은 참 좋구나.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데 음식을 잘 먹으니, 살이 찔 수밖에. 너 그러다 건강에 문제 생길 거다.”

 

“에이, 삼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살이야 언제든 빼면 그만이니까요. 삼촌이야말로 그렇게 일만 하다가 과로사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후……. 말을 말자. 뭐, 아예 못 먹는 것보다는 낫겠지.”

 

고명석은 혀를 끌끌 차는 삼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슬쩍 물었다.

 

“그런데 삼촌. 절 부른 이유는 뭔가요? 타인의 이목을 피하고, 도청장치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한 걸 보면 분명 큰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이기수는 금세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답했다.

 

“그래, 아주 중요한 일이다. 너 Mr. Lee라는 놈을 잘 알지?”

 

고명석은 ‘Mr. Lee’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인상이 굳어졌다.

 

“잘 알죠. 수년간 불법 약물을 공급하여 여러 사람 해친 작자 아닙니까? 마약을 찾는 사람에겐 효과는 뛰어나지만 건강에 치명적인 약물을 공급하고, 사람을 죽이고 싶어하거나 자살하고 싶은 자에게 독극물을 판매한 놈이지요.”

 

“그래. 전국에 지명수배가 내려지고 현상금까지 걸렸지만, 지금까지 실마리를 잡지도 못했지. 정말이지 형사로서 얼굴을 들 수 없어…….”

 

“삼촌 잘못이 아니예요. 놈이 보통내기가 아닐 뿐이죠. 저도 놈에 대해 조사를 해봤지만, 좀처럼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는걸요.”

 

“그래. 놈은 정말이지 신촐귀몰하지. 그런데 최근에 놈에게 접근할 실마리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아. 이 강릉에서 말이지.”

 

고명석은 삼촌의 뜻밖의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강릉? 여기서 단서를 찾으셨다고요?”

 

이기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이게 과연 연관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사해보는 게 낫겠지.”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알았다.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그후 이기수는 조카에게 황태민의 행적을 설명했다. 일개 약사로 알려진 그가 최근에 위험한 약물을 고액에 구매한 뒤 모종의 실험을 하며, 실험 장소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점이 생기지. 첫째, 평범한 약사가 어떻게 그런 비싼 값을 치를 수 있는 거지? 약국이 그렇게까지 돈을 벌만한 직종도 아닐 텐데 말이야. 집안이 본래 부유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미심쩍어.

 

둘째, 실험 내용과 장소를 공개하지 않는 까닭이 뭐지? 그 자는 인간이 잔병에 걸리는 걸 미연에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실험을 한다는 것만 알려주고, 구체적으로 어떤 실험을 하는지, 그리고 실험 장소는 어디인지 같은 걸 일절 말하지 않더군. 뭔가 수상하지 않니?”

 

고명석은 삼촌의 설명을 유심히 듣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했다.

 

“확실히 냄새가 나긴 하네요. 그런데 그게 Mr. Lee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거죠?”

 

이기수는 조카 앞으로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생각해보렴. 그 놈이 아무리 신촐귀몰하다고 해도, 그 많은 약물을 어떻게 스스로 만들 수 있겠니? 분명 누군가에게 약물을 공급받는 거야.”

 

“그럼 삼촌은 그 자가 바로 황태민이라는 약사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물증이 없어서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 그 자가 Mr. LEE에게 약을 공급하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챙겼다면, 그 비싼 약물을 사들여서 비밀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설명이 되니까.”

 

“과연…….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고명석은 턱을 어루만지고 두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기수는 그런 조카에게 그동안의 일을 계속 설명했다.

 

“그 약사를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서 조사했는데, 상당히 여유로운 태도로 취조에 임하더라. 그러면서도 뭔가에 쏠린 인상이었어.”

 

“뭔가에 쏠렸다고요?”

 

“그래. 인간을 완전하게 만들어야 하며, 자신은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더군. 인간이 완전해진다니,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고명석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수색 영장을 발부받으셨나요?”

 

이기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취조에서 별다른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영장을 받아낼 수 있겠니? 서장님도 ‘착실한 분에게 괜한 트집을 잡는 거 아니냐’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시더라.”

 

“그럼 그냥 돌려보낸 거예요?”

 

“할 수 없지. 참고인 자격으로 왔고, 혐의도 없는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 자에게 뭔가 있는 건 분명해. 분명 뭔가가 있어…….”

 

고명석은 삼촌의 긴 설명을 들은 뒤 헛기침을 한 차례 한 후 자기 생각을 밝혔다.

 

“삼촌의 추리는 허점이 많긴 하지만, 아예 부정할 수 없겠어요. 그렇지만 이걸 가지고 수사할 수는 없겠죠.”

 

“그래. 바로 그것 때문에 널 보자고 한 거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간단해. 황태민에게 접근해라.”

 

고명석은 삼촌의 지시에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저보고 그 자에게 접근하라고요?”

 

이기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래. 손님으로 가장해 약국에 들리든가, 이웃 주민으로 위장해서 주변을 맴돌던가 해서 그 자를 속여봐. 너라면 잘할 거라 믿는다.”

 

“후……. 당치 않는 부탁을 하시네요. 민간인일 뿐인 저더러 호랑이 소굴에 들어가라고 하시다니. 그러다 소중한 조카를 잃으시면 어쩔려고요?”

 

“넌 그리 쉽게 죽을 녀석이 아니야. 분명 실마리를 찾아내겠지.”

 

“그렇게 높게 평가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과연 삼촌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조카가 짐짓 발을 빼려는 듯한 모습을 취하자, 이기수는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며 말했다.

 

“그래서 못하겠다는 거냐?”

 

고명석은 잠시 잠자코 있다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답했다.

 

“아뇨. 맡겠어요. 안 맡으면 삼촌이 용돈을 주지 않으실 테니까요.”

 

이기수는 그 말에 발끈해 인상을 잔뜩 구기며 나무랐다.

 

“뭐야? 내가 그런 소인배인줄 아니? 맡기 싫으면 안 맡아도 돼! 용돈은 계속 줄 테니까.”

 

고명석은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답했다.

 

“장난이었어요, 삼촌! 실없는 농담이었다고요.”

 

“……. 하나도 재미 없었다. 다시는 그따위 농담 입밖에도 꺼내지 마라.”

 

“네~. 근데 제가 약사를 조사하는 동안, 삼촌은 뭐하실 건가요?”

 

“뭐하긴? 형사로서 계속 일해야지.”

 

“조카에게 어려운 일 맡겨놓고 자기는 신경쓰지 않는다고요? 이거 좀 너무한데요.”

 

“얌마! 경찰서에 밀려오는 민원과 사건이 하루에만 몇 건인줄 아니? 그거 다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고! 네가 뭔가 찾아내서 내게 가져오면, 그걸 기반 삼아 수색 영장을 청구할테니 그리 알아라!”

 

삼촌이 못을 단단히 박자, 고명석은 볼을 손가락 하나로 긁으며 무언가를 숙고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좋아요! 기왕 세상에 태어난 이상, 의미있는 일을 한번쯤 해보고 죽어야겠죠.”

 

조카가 결심을 밝히자, 이기수는 조카의 손에 자기 손을 얹고 두 눈을 마주보며 당부했다.

 

“몸조심해라.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해라. 만약 태민이 Mr. Lee와 연관된 게 사실로 드러나면, 단독으로 수사하지 말고 내게 바로 알려라. 알았지?”

 

“알았어요, 삼촌.”

 

고명석은 빙긋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겠어요.”

 

그리하여 베테랑 형사와 한량으로 지내던 탐정은 한 팀이 되어 황태민을 조사하기로 했다. 그들이 과연 진상을 파헤칠 수 있을지, 아니면 도중에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지는 오로지 운명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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