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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약]

12화 송골매 형사

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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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간(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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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경찰서 형사과. 이곳 형사들은 강릉에서 벌어진 범죄 사건을 맡아 증거와 증언을 확보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등 바쁜 일상을 살아갔다.

 

외부인이 볼 때는 타 지역 형사과와 특별히 다른 점은 없는 곳이었지만, 형사들은 여기가 유독 빡세다고 여겼다. 그들은 여유가 생길 때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푸념하곤 했다.

 

“후……. 정말이지 힘들어 죽겠어. 잠깐 숨 좀 돌리려 하면 바로 날벼락이 날아오고, 보고가 조금이라도 부족하다 싶으면 여지없이 욕설을 들으니…….”

 

“그러게 말이야. 물론 수사가 중요하긴 하지만, 너무 빡세게 구는 게 아닌가 싶어. 그러다가 사람 골로 가 버리면 어쩌려고…….”

 

“쉿! 송골매가 듣겠어. 또 날벼락 맞을 수도 있으니 목소리 좀 낮춰!”

 

형사들로부터 ‘송골매’로 불리는 인물은 바로 이기수 경감이다. 그는 이마에 깊은 상처 두 줄이 그어져 있고, 얼굴에 살집이 거의 없어 삐쩍 말라 보이고, 눈매는 매섭고, 허리는 구부정했다. 이런 외모가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송골매와 비슷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강력 범죄 사건을 전담한 이 베테랑 형사는 강릉 형사과에서 근무하는 수사관들에게 있어 공포의 존재다. 그는 부하들이 가벼운 농담을 건네는 걸 매우 싫어해, “그딴 소리 할 시간 있으면 수사나 열심히 해!” 라고 면박 주곤 했다.

 

게다가 무척 깐깐해서 부하의 수사 보고에 허점이 조금이라도 있다 싶으면 똑바로 못하냐며 갈궜고, 조금이라도 딴짓하면 “여기 놀러 왔냐? 정신 바짝 차려!”라고 야단쳤다.

 

이기수 경감의 깐깐한 면모는 비단 부하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상관인 경찰서장도 자기 뜻에 조금이라도 어긋난다 싶으면 직언을 퍼붓는 그 떄문에 진땀을 빼기 일쑤였다.

 

한 번은 절도 사건의 용의자 4명을 심문하던 중 한 용의자가 자기를 잠시 풀어달라고 사정했다.

 

“제 어머니가 요즘 편찮으셔서 오늘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는데, 가족이라곤 저 뿐입니다. 부디 말미를 주세요. 병원에 모셔다드린 후 다시 오겠습니다.”

 

서장은 절도 혐의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사정이 타당하다고 보고, 하루간 말미를 주기로 했다. 그러자 이기수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서장님! 취조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용의자를 함부로 풀어주다니요? 이건 원칙에 어긋나는 처사입니다!”

 

“모친이 편찮으시다고 하지 않은가? 수사도 중요하지만, 윤리를 어길 수는 없지.”

 

“안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취조를 마무리하는 게 우선입니다. 취조를 이어가게 해주십시오!”

 

“이것 봐, 경감! 뭐 그리 깐깐하게 구는가? 혹시 이 사람이 도주할까봐 그런 거라면, 사람을 붙여서 도주의 여지를 없애겠네.”

 

“그래도 안 됩니다! 취조할 시간을 엄수하는 건 수사관에게 중요한 권리입니다. 계속 취조하게 해주십시오!”

 

그가 이토록 강경하게 요구하자, 서장은 어쩔 수 없이 용의자를 풀어주지 않았다. 용의자는 이후 취조 결과 절도 혐의가 밝혀지면서 구속되었지만, 취재 기자들에게 “경찰이 편찮으신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지 못하게 했다”라고 폭로했다.

 

이 일로 강릉 경찰서는 강압적인 수사로 윤리를 위배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기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용의자를 풀어주지 말라고 했으니 욕하려면 자기를 욕하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행위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자가 진정 편찮은 어머니를 위하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절도를 저질러서 감옥에 수감되지 않았을 겁니다. 자기가 감옥에 가면 어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그런 짓을 저질렀는데, 이제 와서 풀어달라니, 어찌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이에 한 기자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도 잠깐 시간을 내서 병원에 모시는 게 낫지 않습니까? 형사 한 명을 붙여서 함께 하게 하면 도주의 염려도 없었을 텐데요.”

 

이기수는 고개를 단호히 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특혜를 준다면, 다른 용의자도 똑같이 원할 겁니다. 그들이 빠져나갈 여지를 원천 봉쇄해야지요.”

 

이렇듯 깐깐하기 짝이 없어 상관과 부하 모두를 힘들게 했지만, 아무도 그를 어찌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가 하는 말에 틀린 게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무척 유능한 수사관이어서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형사 경력 20여 년간 3백여 건이 넘는 범죄 사건을 해결했다. 그 중 70여 건의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강력 범죄를 도맡아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만에 범인을 잡아냈다.

 

하지만 직언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강직한 성격으로상관들에게 미움을 산 탓인지, 공적에 비해 출세가 늦었다. 일찌감치 서장이 되고도 남았지만 경감에 그쳤고, 본래 서울 경찰청에서 활약하다가 모종의 사유로 강릉으로 좌천되었다.

 

또, 수사에 워낙 몰두하느라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아 두 번의 결혼 모두 이혼으로 끝났고, 1남 1녀를 두었으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서 관계자들과의 관계 외에는 어떤 인간 관계도 없을 정도로 사교성도 떨어졌다.

 

그런 그에게 ‘친구’라 할 만한 유일한 존재는 바로 형사 수첩이었다. 검은색 가죽으로 덮혀진 이 수첩은 언제나 그의 손에 들려 있었고, 내부엔 빼곡한 글씨가 가득 적혀 있었다.

 

이기수는 누군가가 자기 수첩에 손을 대는 걸 무척 싫어했다. 그가 잠깐 화장실에 갔다 오는 사이, 부하 하나가 수첩 내용이 궁금해서 손을 댄 적이 있었다. 이기수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 버럭 화냈다.

 

“자네 지금 뭐하나? 누가 마음대로 내 수첩에 손 대라고 했어?”

 

“죄, 죄송합니다! 궁금해서 그만…….”

 

“궁금했다고? 쓸데 없는 데 호기심 갖지 말고 수사나 해! 또다시 수첩에 손을 대면 형사과에서 내쫓을 줄 알아!”

 

사실 그에게 형사를 임의로 내쫓을 권한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평소 그를 두려워하던 형사들은 겁을 집어먹었고, 이후로는 누구도 수첩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도 그 수첩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렇듯 오랫동안 형사를 맡아서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면서 상관과 부하들에게 두려움을 샀지만, 사실 그에겐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이 있었다. 그는 종종 수첩에 적힌 ‘그 사건’에 관한 기록을 살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곤 했다.

 

“Mr. Lee……. 이 유령같은 놈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5년 전, 이기수는 서울 강남의 한 학교 옥상에서 고등학생 3명이 집단 자살한 사건을 맡았다. 학생들은 성적 부진과 가정 불화로 신세를 비관하다가 하나같이 시중 판매가 금지된 약을 먹고 죽었다.

 

단순한 자살 사건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학생들이 이 약품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공부나 하던 녀석들이 의사나 약사도 구하기 힘든 약을 확보하다니. 이건 절대로 단순한 집단 자살 사건이 아니야. 분명 배후가 있을 거야…….’

 

며칠간의 조사 끝에, 이기수는 학생들이 생전에 온라인에서 불법으로 운영되는 ‘자살 권유 사이트’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들은 부모님의 돈을 빼돌려서 사이트가 판매하는 자살용 약을 구매한 것이었다.

 

이에 사이트 운영자를 추적하여 모두 잡아들인 뒤, 약을 구한 경위를 물었다. 그는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궁을 견디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Mr. Lee 라는 사람으로부터 약을 구매했습니다.”

 

“Mr. Lee? 그 자는 누군가?”

 

“저도 잘 모릅니다. 본명을 절대로 밝히지 않았거든요.”

 

“인상착의는 어떻게 되지?”

 

“그것도 모릅니다. 이상한 가면을 쓰고 온 몸을 두꺼운 코트로 가리고, 있어서요. 단지 키가 상당히 큰 남자라는 것만 압니다.”

 

이기수는 Mr. Lee가 위험 인물임을 직감하고 정체를 쫓기 시작했다. 몇달에 걸친 끈질긴 수사 끝에, 그는 이 자가 단지 자살용 약품만 공급한 게 아니라는 걸 밝혀냈다.

 

Mr. Lee는 마약에 중독된 자들에게 ‘약효가 잘 드는’ 마약을 비교적 싼 값에 판매했다. 또한 대학 진학 시험을 앞둔 학생들에게 약을 판매했는데, 기억력과 판단력이 일시적으로 향상되는 효과가 있지만, 얼마 후 극심한 두통과 설사에 시달리는 부작용이 있었다.

 

심지어 누군가를 독살할 마음을 품은 이들에게 독약을 판매한 정황도 포착되었다. 그가 제공한 독약은 단 한 알, 또는 한 방울로 목숨을 빼앗을 수 있었고, 검시를 웬만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찾아내기 힘들었다.

 

이기수는 그동안의 수사 결과를 상부에 보고했고, 대한민국 경찰청은 Mr. Lee를 위험한 범죄자로 판단하여 전국에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록 Mr. Lee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고, 단지 그와 거래했던 자들이 검거되었을 뿐이었다.

 

그 역시 Mr. Lee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좀처럼 꼬리를 잡지 못했다. 그 사이에 Mr. Lee가 제공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약물에 의해 중독되거나 목숨을 잃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났다.

 

‘이건 뭔가 이상해. 아무리 신촐귀몰한 놈이라도 전국의 경찰이 추적했는데 흔적조차 찾지 못하다니……. 혹시 상부의 누군가가 그의 뒤를 봐주는 건 아닐까?’

 

그는 상부에 내통자가 있다고 추측하고, 내부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건의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건의는 기각되었고, 오히려 이 일로 상관들에게 미움받아 강릉 경찰서로 전출당했다.

 

졸지에 좌천당하고 출세에 지장을 받았지만, 이기수는 이 일로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강릉에서도 Mr. Lee의 마수가 뻗쳐 있으리라 짐작하고, 강릉에서 발생한 약물에 의한 사건을 별도로 수첩에 적어놓고 Mr. Lee 와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그러던 중 한 인물이 그의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그 사람은 ‘마법의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황태민이었다.

 

‘이 사람, 시중 판매가 금지되어 있고 실험실에서나 쓸 수 있는 위험한 약품을 다량으로 구입했군. 일단 정상적인 거래로 사들였긴 했지만,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이기수는 곧바로 경찰서장에게 찾아가서 태민을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서에 소환하자고 요청했다. 서장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그 평범한 약사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

 

이기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제가 보기에 그 사람은 평범한 약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잘못 다루면 위험한 약품을 다량 구입한 걸 보면, 뭔가 냄새가 납니다.”

 

“대체 그 자가 누구와 연관이 있단 말인가?”

 

“그건 더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Mr. Lee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찰서장은 ‘Mr. Lee’가 언급되자 펄쩍 뛰었다.

 

“Mr. Lee?! 자네,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예. 아직 증거는 없습니다만…….”

 

“증거도 없는데, 단지 위험 약품을 구입했다는 이유로 그런 위험한 범죄자와 연관시키는 건 너무하지 않나? 그러다가 언론의 질타를 받으면 어쩌려는가?”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그 사람을 조사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이기수가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자, 경찰서장은 마지못해 승낙했다. 다만 한 가지 주의를 줬다.

 

“어디까지나 참고인 조사일 뿐이라는 걸 명심하게. 즉, 용의자로 취급하지 말라는 거네. 자네는 단순히 증인으로 온 사람 조차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대하는 버릇이 있어. 이번에는 자제하게.”

 

이기수는 그 말이 민망했는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답했다.

 

“서장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그후 경찰서 소환장이 황태민이 운영하는 마법의 약국에 전해졌다. 혹시나 태민이 도주할 우려가 있어 형사 몇 명이 약국과 태민의 저택 주변에 배치하여 동태를 살폈다.

 

하지만 정작 태민은 소환에 응하고 경찰서에 태연한 태도로 방문했다. 그는 경찰서장과 악수를 나눈 뒤 자기를 부른 연유를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딱히 나쁜 짓을 한 기억은 없는데요.”

 

서장이 애써 미소지으며 답했다.

 

“태민 씨에 관해 조사할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특정한 혐의가 있어 소환장을 보낸 게 아니니 안심하세요.”

 

“그래요?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때 이기은이 불쑥 끼여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취조실에서 하지요. 자, 어서 갑시다.”

 

태민이 정색하며 대꾸했다.

 

“무슨 일인지 먼저 알고 갑시다. 다짜고짜 취조실로 끌고 가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취조를 받으시면 저절로 알게 될 겁니다. 자, 가시죠.”

 

“뭐라고요? 지금 절 용의자 취급하는 겁니까?”

 

서장은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동안 안절부절 못하다가 이기수를 가볍게 나무랐다.

 

“자네, 왜 그러나? 내가 자중하라고 당부했잖아. 벌써 까먹은 건가?”

 

이기수는 그제야 앞서 서장 앞에서 했던 약속이 떠올랐는지 머리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서장님. 잠깐 잊어버렸습니다.”

 

“후우……. 앞으로는 주의하게. 태민 씨, 죄송합니다. 저희가 태민씨를 부른 연유는 다름이 아니라 최근에 위험한 약물을 대량 구입하신 이유를 알고 싶어섭니다. 부디 수사에 응해주십시오.”

 

태민은 서장의 설명을 듣고 한쪽 눈썹을 치켜세운 채 묵묵히 서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취조실로 안내해 주시죠.”

 

이후 취조실에 들어온 태민은 의자에 앉았고, 이기수 형사는 맞은편에 앉아서 태민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먼저, 당신은 불리한 증언을 강요받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벌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할 경우,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겁니다.”

 

“잠깐, 잠깐만요.”

 

태민이 한 손을 들어 연신 내저으며 물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그거 미란다 원칙인가 뭔가 하는 거 맞죠?”

 

“그렇습니다.”

 

“그건 용의자를 잡았을 때 하는 소리 아닙니까? 지금 절 용의자 취급하시는 건가요? 전 어디까지나 참고인으로서 여기 온 것일 텐데요.”

 

이기수는 서늘한 눈매로 응시하며 답했다.

 

“참고인으로 온 분이 종종 용의자로 전환될 경우가 있지요. 그리고 여기서 증언이 잘못 되면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의미에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태민은 콧방귀를 한 차례 뀌며 대꾸했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 보군요. 뭐, 상관 없습니다. 절 참고인으로 대하든, 용의자로 취급하든, 아무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거리낄 게 없으니까요.”

 

“그건 두고 보면 알겠죠.”

 

이기수는 두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결백한지, 아닌지는 취조해 보면 다 나올 겁니다.”

 

그후 이기수는 황태민을 상대로 다섯 시간에 걸쳐 강도 높은 취조를 벌였다. 그는 먼저 위험한 약재를 다량 구입한 연유를 물었다.

 

“약사가 그걸 취급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닐 텐데요. 환자에게 먹이는 데 쓰지도 않을 약품을 어째서 구입하셨습니까?”

 

태민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사실, 저는 의학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 논문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험을 몇 가지 수행해야 해서, 의약청의 허락을 받고 약품을 구입한 것뿐입니다.”

 

“실험은 어디에서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합니까? 개인사이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왜 말씀드릴 수 없는 거지요? 굳이 숨길 이유는 없을 텐데요.”

 

“제 연구실까지 들이닥쳐서 귀찮게 굴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생판 모르는 자들이 실험실에서 소란을 피우는 게 싫거든요.”

 

이기수는 연구실의 위치를 알리지 않는 태민을 수상하게 여겼지만, 더 캐묻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구입하신 약품 목록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비싸더군요. 그걸 어떻게 구매하셨습니까?”

 

“그야 약국을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돈으로 샀지요.”

 

“그건 믿기 어렵군요. 약국 운영이 아무리 잘 된다고 해도, 그 약품들을 사들이기엔 벅찰 텐데요…….”

 

이기수가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며 묻자, 태민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어서요. 그걸로 약품을 구매하고 있습니다.”

 

“유산이라……. 그 부분에 대해 조사해도 되겠습니까?”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숨길 필요는 없으니까요.”

 

태민이 태연하게 받아치자, 이기수는 서류를 한동안 뒤적인 뒤 다른 질문을 던졌다.

 

“최근에 논문을 쓰기 위해 실험을 한다고 하셨는데요. 그 실험에 대해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태민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어차피 말 안해도 끝까지 확인하려 할 테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지요. 전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탈바꿈하게 해주는 획기적인 약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이기수는 그 말에 눈썹을 치켜세우며 되물었다.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해주는 약이라고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태민은 목청을 한 차례 가다듬은 뒤 설명을 시작했다.

 

“의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인간은 계속 감기 같은 잔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건 신체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전 웬만한 바이러스나 세균에 꿈적도 하지 않을 신체를 만들어낼 획기적인 약품을 개발하려 합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가능합니다. 그걸 믿고 지금껏 연구하고 있습니다. 절 몽상가라고 비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사회가 이 정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몽상을 실현했기 때문이지요.

 

가령, 하늘을 자유로이 날고 싶어하는 인간이 있었기에 비행기가 탄생했고, 보다 빨리 가고 싶어하는 인간이 있어서 자동차와 기차가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품은 꿈 역시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이기수는 잔뜩 꿈에 부풀어올라서 얼굴이 잔뜩 상기된 태민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냉정한 어투로 지적했다.

 

“그런 바람직한 일을 하시는 분이 연구실을 밝히지 않으시다니요?”

 

태민은 빙긋 웃으며 답했다.

 

“제 연구가 벌써부터 드러나고 싶지 않아서요. 그랬다간 누군가가 빼돌릴 수도 있으니 말이죠.”

 

이기수 형사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한 가지 질문을 추가로 던졌다.

 

“태민 씨는 지명수배자 Mr. Lee의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태민은 길이 탄식하며 답했다.

 

“어찌 모르겠습니까? 수수께끼의 수배자라며 온통 떠들썩 했는데요. 정말이지 악독한 놈입니다. 그런 약품을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떄문에 많은 이들이 죽어나가고 있으니…….”

 

이때 이기수가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그에게 약품을 공급하지 않았습니까?”

 

태민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제가요? 제가 왜 그 범죄자와 협력해야 하죠?”

 

이기수 형사는 두 눈을 번뜩이며 답했다.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입니다만, 약품을 구매할 거금을 그로부터 받아내고, 그 대가로 약을 만들어서 공급할 수도 있겠지요.”

 

태민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답했다.

 

“절대로 그런 일 없습니다. 하늘에 맹세하지요.”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의심되신다면 조사해 보시지요. 아무것도 얻을 게 없을 겁니다.”

 

태민이 Mr. Lee와의 관계를 끝까지 부인했지만, 이기수는 여전히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본래 의심 많은 성격이기도 했지만, 태민의 마지막 발언이 미심쩍기 때문이기도 했다.

 

‘의심된다면 조사해 보라니……. 정말 억울하다면 그런 일은 없다며 펄펄 뛸 텐데, 냉정하기 짝이 없군. 분명 뭔가가 있어…….’

 

그후 이기수는 태민을 계속 추궁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윽고 취조가 끝나자, 태민은 “의심을 푸셨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남긴채 곧바로 귀가했다.

 

“어떤가? 뭔가 나왔나?”

 

서장이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묻자, 이기수는 조용히 답했다.

 

“수상한 정황이 몇 가지 있습니다만,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자네가 지나치게 생각한 거야. 저 사람은 그저 평범한 약사일 뿐이야.”

 

“글쎄요…….”

 

“아무튼 별 문제가 발견되지 않은 이상, 저 사람을 더 조사하지 말게. 다른 사건이나 해결하게나!”

 

이기수는 서장의 지시에 따라 다른 사건을 맡았지만, 내심 꺼림칙했는지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분명 뭔가가 있어. 뭔가가……. 태민과 Mr. Lee 사이에 특수한 관계까 있을 거야…….’

 

그는 한동안 어찌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는 수 없지. 그 녀석과 얘기해보는 수 밖에. 영 믿음직하지 못한 놈이지만, 머리 하나는 좋으니 뭔가 알아낼 지도 모르지…….”

 

그는 화장실로 가서 휴대폰을 통해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한동안 귀에 전화기를 갖다 대던 그는 상대방이 받자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너 오늘 밤에 국밥집에 들릴 수 있니? 너와 의논해야 할 게 있다. 그게 뭐냐고?”

 

그는 한동안 심호흡한 뒤,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세상이 발칵 뒤집힐 수도 있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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