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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약]

10화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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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레빗스의 유격수, 박현석. 데뷔 이래 6년간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다가 쫓겨날 위기에 몰렸다. 야구 외에는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팀에서 쫓겨나면 늙고 병든 어머니와 자기를 사랑해주는 아내를 부양할 길이 막막했다.

 

그러다가 태민으로부터 ‘마법의 약’을 전달받은 그는 프로 선수로서 약물의 도움을 받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석은 마법의 약 덕분에 남들보다 탁월한 신체 능력과 판단 능력을 일시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어느덧 강릉 레빗스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았고, 하위권을 맴돌던 팀이 선두권 경쟁에 뛰어드는 데 힘을 보탰다.

그러나 눈부신 성공에 도취된 탓인지, 현석은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시작했지만, 막상 성공하고 나니 더 큰 욕심을 품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치면 모자름과 같다’라는 뜻으로, 과욕을 부리는 건 제대로 하지 않는 것과 다를바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령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더라도, 초기 성과에 고무되어 과욕을 부리면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적정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현석은 이러한 이치를 망각하고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당초 태민은 현석에게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고, 경기가 없는 날에는 복용을 자제하라고 권했다. 약을 자주 복용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현석은 이에 따라 매일 한 알씩 복용하고, 경기가 없는 날에는 먹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약을 먹었는데도 이전처럼 머리가 빠릿빠릿 돌아가지 않고 몸도 그리 가볍지 않았다.

 

‘예전처럼 약발이 듣지 않는 걸 보니, 한 알만으로는 부족한가 보군. 그렇다면…….’

 

한동안 어찌할지 고민하던 현석은 복용량을 한 알에서 두 알로 늘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복용량을 늘리면 약발이 들을 뿐만 아니라 한 알을 먹을 때보다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이 결정을 민정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에 앞서, 태민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민정과 의논하라고 권했다. 그러니 민정에게 복용량을 늘리는 문제를 논의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나 현석은 그러길 꺼렸다. 그는 경기 때마다 구장을 찾아와서 자신을 관찰하고, 경기 후 주변을 맴도는 그녀를 부담스러워 했다. 게다가 동료들도 민정의 존재를 인식하고 “너 설마 바람 피는 거 아니지?”라는 농담을 던지곤 했다.

 

물론 실없는 농담이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지만, 현석은 강한 경계심을 품었다. 그는 특종에 눈이 먼 기자들이 동료들이 농담하는 걸 엿듣고 자신과 민정의 관계를 곡해하려 들 걸 염려했다.

 

그래서 가급적 민정과 만나지 않으려 했고, 설령 만나더라도 안부 인사와 경기 결과만 잠깐 이야기하고 헤어지곤 했다. 민정은 중요 사안이 있다면 꼭 알리라는 태민의 뜻을 상기했지만, 현석은 끝내 복용량을 늘린다는 중대한 사안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의학 지식이라곤 ‘담배와 술은 몸에 해롭다’ 정도밖에 없던 그가 약사인 태민의 조언도 받지 않고 무작정 결정한 대가는 컸다. 건강하던 신체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두통이 간혈적으로 생기고 눈이 침침해지는 증상이 발생했다. 현석은 이에 대해 그동안 너무 몸을 굴려서 피곤해진 탓이라 여겼다.

 

“그동안 잠도 제대로 안 자면서 몸을 던져댔으니 피곤할 만도 하겠지. 한 숨 푹 자면 나아지겠지, 뭐.”

 

그러나 하룻밤을 푹 잤는데도, 증세는 완화되기는 커녕 더욱 심해졌다. 머리를 옥죄는 듯한 두통이 느껴지고, 시력은 멀리 있는 물체를 분간하기 어려줄 정도로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증세도 생겨났다. 혀가 마비됐는지 맛이 느껴지지 않았고, 양손이 저절로 떨렸으며, 심장 박동이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다. 그는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인지했지만,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에게 이상이 생긴 걸 처음 눈치챈 이는 친한 친구이자 팀동료인 이대은이었다. 그는 현석이 컵에 담긴 물을 마시는 내내 손을 떠는 걸 보고 걱정했다.

 

“현석아, 무슨 일 있어? 혹시 중병이라도 걸린 거니?”

 

현석은 급히 손사래를 치며 부인했다.

 

“아, 아냐! 난 아무 병에도 걸리지 않았어. 너무 건강해서 탈이라고!”

 

“그래? 하지만 손을 떠는 걸 보면 뭔가 이상이 있는 거 같은데……. 병원에 가보는 게 어떠니?”

 

대은이 여전히 걱정스러워하며 권하자, 현석은 양손을 휙휙 내저으며 거절했다.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 그리고 감독님한테 괜히 말하지 마.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감독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 정말 괜찮겠어?”

 

“괜찮다니까! 내가 좀 피곤해서 그런 것뿐이니 걱정할 필요 없어!”

 

그가 병원에 가보라는 제안을 한사코 거절한 건, ‘마법의 약’을 복용한 걸 의사들에게 들통나면서 자신이 그동안 대활약했던 게 약의 힘 덕분이었다는 게 드러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든 증상을 숨기려 애썼다. 평소 호주머니에 양손을 깊숙이 찔려둬서 손이 떨리는 걸 보이지 않으려 했고, 두통제를 별도로 복용해서 통증을 완화하려 했고, 동료들한테 가급적 활기찬 모습을 보여서 자기에게 별 문제 없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차츰 현석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감지한 동료들이 늘어났다. 우선, 그들은 현석이 지나치게 밝은 모습을 보인 걸 오히려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얼굴빛이 좋지 않다며 무슨 일 있느냐고 묻는 동료의 손을 붙잡고 마구 흔들고 과장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난 괜찮아! 괜찮다고! 걱정할 필요 없어!!!”

 

팀동료들은 그의 이같은 언행이 자연스럽지 않으며, 마치 연극 배우처럼 진심을 숨기고 일부러 과장된 행동을 벌인다고 여겼다. 하지만 현석은 진심으로 그러는 것일 뿐이니 오해하지 말라며, 동료들의 지적을 묵살했다.

 

동료들은 현석이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자책을 넘어 자학하는 것도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삼진당할 때마다 방망이를 내동댕이치고 주먹으로 머리를 연신 쥐어박으며 성질부렸다.

 

“젠장! 그걸 못 치다니! 이런 한심하고 멍청한 놈아! 그건 쳤어야지!!!”

 

또한 수비 도중 실책을 저질러서 상대 선수를 잡지 못할 때, 자기 뺨을 스스로 치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썩을 놈아! 그걸 못 잡으면 어떡해! 그따위로 해서야 프로 선수라고 할 수 있겠냐?”

 

동료들은 이에 대해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건 좋지만, 자신을 학대할 필요까지는 없는 거 아니냐?”라며 불편해 했다. 대은이 이런 분위기를 전해주면 자중하라고 권하자, 현석이 정색하며 되물었다.

 

“내가 동료에게 화낸 거 본 적 있어? 내가 스스로 책망하는 것뿐인데, 그게 문제가 돼?”

 

“문제 되는 건 아니지만, 보기 불편해서 그래. 그렇게 자책을 심하게 하면, 선수들이 널 어떻게 보겠니?”

 

대은이 부드러운 어조로 재차 달랬지만, 현석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신경쓰지 말라고 해! 난 내 방식으로 할 테니, 날 신경쓸 틈이 있으면 훈련이나 더 하라고 해!”

 

선수들은 그 외에도 현석이 주위를 심하게 경계하는 것도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어딜 갈 때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자기를 따라오는 자가 있는지를 반드시 살폈고, 동료들이 잡담을 나눌 때 귀를 가까이 기울며 자기 얘기가 나오는지 확인했다.

 

심지어 한 번은 동료가 화장실에 오래 있다 덧아웃에 복귀했다. 그러자 현석이 달려와서 “무엇 때문에 오래 있는 거냐?”고 캐물었다. 동료가 “변비 때문에 오래 걸렸다”고 변명하자, 그는 의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내 욕을 하느라 오래 걸린 건 아니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널 욕하겠어?”

 

동료가 황당해 했지만, 현석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요즘 내가 이상해졌다는 소리가 많던데, 너도 날 흉보려고 그런 거 아냐? 하여간 사람을 잡아먹지 못해서 탈인 놈들이 많다니까…….”

 

이러한 현석의 변모는 팀 동료들을 당혹하게 하였다. 그들이 아는 현석은 매사에 성실하면서도 인정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과장된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자학을 심하게 하고, 별 일 아닌 거에도 의심하다니. 그들은 현석이 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맛이 가도 단단히 간 것 같아.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어디 아픈 거 아냐?”

 

“그러게 말이야. 가정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저리 변할 리가…….”

 

“개인사를 가지고 왈가왈부해서는 안 되겠지만, 계속 저러면 곤란한데…….”

 

현석의 변모는 그의 심리가 지극히 불안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기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인식한 순간, 그의 마음에 다음과 같은 불안이 엄습했다.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강릉 레빗스는 나를 내쫓아버릴 거야. 동료들은 날 버릴 테고, 아내는 떠나버리고, 어머니도 무척 실망하겠지. 분명 그리 되고 말 거야…….’

 

그는 어렵게 얻은 성공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증상을 악착같이 숨겼고, 동료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밝은 모습을 가급적 보이려 애썼다. 그게 지나친 나머지 동료들의 의심을 사는 역효과를 야기했지만.

 

또한, 구단이 자기를 쫓아낼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잘하는 모습만 보이려 애썼고, 실수를 저지르기라도 하면 스스로를 자책하다 못해 학대하다시피 했다. 역시 그 정도가 지나쳐서 동료들이 껄끄러워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안감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는 누군가가 자기를 음해하려 들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그래서 동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서 자기를 흉보는지 알아봤고, 나중에는 코치까지 의심했다.

 

‘코치들이 날 껄끄러워할 지도 몰라. 어쩌면 이미 보드진에 안 좋은 소리를 했을지도……. 절대로 방심하지 않겠어. 절대로……!’

 

이렇듯 매사를 불안과 의심 속에 살아가던 어느 날, 현석은 사고를 치고 말았다. 심판이 바깥쪽으로 빠진 공을 스트라이크로 판정해 삼진 아웃 당하자, 격분한 나머지 방망이를 내동댕이치고 심판에게 대들었다.

 

“이게 어떻게 스트라이크입니까? 완전 빠졌잖아요!”

 

“내가 보기엔 스트라이크였어. 돌아가.”

 

“말도 안 됩니다! 분명 볼이었다고요!”

 

현석이 계속 버럭 화내며 항의하자, 심판은 퇴장 명령을 내렸다. 현석은 격분하여 심판에게 달려들었다.

 

“제가 왜 퇴장 당해야 합니까? 심판이면 심판답게 제대로 판정하십쇼!!!”

 

동료들은 그를 급히 붙들고 덧아웃으로 끌고 갔다. 하지만 그는 덧아웃에서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변의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부순 뒤 라커룸으로 들어가 버렸다.

 

현석은 이 일로 3경기 출장정지에 벌금 100만원을 납부하는 징계를 받았다. 팬들은 현석이 평소 열정이 대단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단순히 열정이 지나쳐서 이성을 잠깐 잃었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를 평소 지켜본 팀 동료들은 달랐다. 그들은 그동안 현석의 언행을 지켜봤기에, 이번 사건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여겼다. 특히 이대은은 직접 나서기로 마음 먹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계속 방치했다간 현석이 영영 잘못될지도 몰라. 현석을 위해서라도, 내가 나서야겠어…….’

 

대은은 황병갑 수석코치를 찾아가 그동안 현석이 보인 이상 행동을 설명했다. 여기에 물 마실 때 손을 덜덜 떨던 걸 목격한 사실도 덧붙이면서, 현석에게 1주간 휴식을 주고, 병원에서 진찰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 자네 의견도 일리 있지만, 현석이는 그걸 원하지 않을 텐데? 본인이 원하지 않는 걸 강요할 수는 없어.”

 

수석코치가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자, 대은은 더욱 강하게 말했다.

 

“녀석이 반발하더라도 억지로 해야 합니다. 이 일은 그 녀석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대로 가면 녀석이 영영 맛이 가버릴 지도 몰라요. 부디 감독님께 말씀드려 주세요!”

 

황병갑 수석코치는 한숨을 살짝 내쉬며 답했다.

 

“알겠네. 감독님께 말씀드리지.”

 

그는 대은의 의견을 곧바로 최병도 감독에게 전했다. 그러나 최병도 감독은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런가? 녀석이 흥분한 나머지 사고를 친 거 뿐이잖나? 승부욕이 과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황병갑 수석코치는 고개를 저으며 반론을 제기했다.

 

“감독님. 팀동료들이 그를 시한폭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걸 계속 방치하면 팀 사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부디 잘 생각해주십시오.”

 

최병도는 혀를 끌끌 차며 대꾸했다.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호들갑이니 원……. 알았어! 현석이 더러 감독실에 오라고 해!”

 

얼마 후, 현석이 감독실에 들어왔다. 그는 최병도 감독을 향해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이며 외쳤다.

 

“감독님! 민폐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부디 제게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반드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최병도는 그를 묵묵히 바라보다가 슬쩍 물었다.

 

“현석아, 너 무슨 병이라도 걸렸냐?”

 

“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것도 아니지?”

 

“예!”

 

현석이 씩씩하게 답하자, 최병도 감독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앞으로 잘해보자. 네가 제대로 해주리라 믿겠다.”

 

“감독님, 절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이만 나가봐라.”

 

현석이 방을 나간 뒤, 옆에서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황병갑 수석코치가 최병도 감독에게 물었다.

 

“감독님, 정말 이걸로 괜찮겠습니까? 일단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을 받게 하던가, 정신과 상담의를 불러서 진찰받게 하는 것이…….”

 

그러자 최병도 감독이 싸늘하게 되물었다.

 

“자넨 우리 선수를 환자 취급하고 싶은가?”

 

“제, 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

 

“그럼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말게. 열심히 하는 놈인데 칭찬은 못해줄 망정 뭔가 이상하다는 식으로 트집을 잡으면 되겠나? 괜히 기죽이지 말고 내버려둬. 알아서 잘하겠지!”

 

감독이 이렇게 못을 박아버리니 수석코치가 어찌 더 왈가왈부 할 수 있겠는가? 그는 내심 ‘이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도 될까?’라는 의문을 품었지만,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편, 감독과의 면담을 마친 현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누군가 감독에게 자기를 험담했으리라 의심했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빌어먹을 놈이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죽을 힘을 다하는데,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다니…….’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귀가 길에 올랐다. 그때 어딘가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현석 씨, 잠시 저 좀 봐요.”

 

현석이 그쪽을 바라보니, 단발 머리에 흰색 스커프를 목에 두른 민정이 서 있었다. 그녀는 현석에게 다가가 인상을 다소 찌푸리며 물었다.

 

“요즘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어째서 저와 상담하지 않으시는 거죠?”

 

현석은 민망해하며 부인했다.

 

“제, 제가 무슨 문제 있겠습니까?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하고 사고친 것뿐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나 민정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뇨. 분명 문제 있으세요. 제가 그동안 현석 씨를 지켜봐서 잘 알아요. 솔직히 말하세요. 안 그러면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게 만들겠어요.”

 

“말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고요?”

 

“예. 예를 들어 팔을 비틀어버린다던가, 허리를 꺾는다던가…….”

 

“마, 말하겠습니다! 말할테니 그런 짓 하지 마세요!”

 

그 후 현석은 민정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소상히 전했다. 민정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무표정으로 서 있다가, 현석이 말을 마치자 한숨을 살짝 내쉬며 나무랐다.

 

“어째서 복용량을 함부로 늘리셨어요? 거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 거예요. 약을 갑자기 늘리는 바람에, 부작용이 발생해버린 거죠. 진작에 제게 물어보셨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현석은 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리석어 어리석은 짓을 해버렸습니다.”

 

민정은 그런 그를 차갑게 바라보다가 한 갈색 종이 봉투를 보여줬다. 그 안에는 푸른 빛을 띄는 알약이 3개 들어 있었다.

 

“이건 체내에 들어간 ‘마법의 약’ 성분을 중화시키는 효능이 있는 약이에요. 이 약을 사흘간 한 번씩 복용하세요. 그러면 증상이 완화될 거예요.”

 

현석이 봉투를 받으려 하자, 민정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냉랭한 어투로 말했다.

 

“단, 공짜로 줄 수는 없죠. 이걸 받고 싶다면 300만원을 주셔야 해요.”

 

“3, 300만원이요?”

 

“네. 그 정도 값은 되어야 수지에 맞겠죠. 개발 비용이 워낙 막대해서요.”

 

민정이 이런 식으로 나오자, 현석은 무척 곤란해 했다.

 

“하, 하지만……. 지금 당장 300만원을 구하기는 좀 곤란한데…….”

 

“야구 선수는 대체로 연간 수천 만원을 받지 않나요? 300만원 정도면 지불 가능할 텐데요?”

 

민정이 이의를 제기하자, 현석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게 그렇지 않아요. 연말이 되어서야 연봉이 지급되고, 다음 연봉을 받을 때까지 그걸로 생활비를 비롯한 모든 비용을 메꿔야 하니 간당간당합니다.

 

게다가 제게 늙으신 어머니가 있는데, 몸이 편찮으셔서 치료비를 별도로 지불해야 해요. 그래서 300만원을 지금 당장 마련하는 건 힘들어요.”

 

그러나 민정은 현석의 사정을 조금도 알아주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변명은 필요 없습니다. 애당초 현석 씨가 멋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300만원을 반드시 지불하세요.”

 

현석은 한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민정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복용량을 함부로 늘려서 부작용이 발생한 이상, 그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 알겠습니다. 300만원을 어떻게든 마련해서 지불하지요. 우선 약부터 주십시오.”

 

“아뇨. 돈부터 지급하세요. 약은 그 다음입니다.”

 

“아니, 돈을 꼭 지급하겠다니까요? 절 못 믿으시는 겁니까?”

 

현석이 짜증을 담아 항의했지만, 민정은 냉랭하게 답했다.

 

“믿을 수 없죠. 주인님의 권고를 제대로 따르지 않은 사람을 어찌 믿겠어요?”

 

“으, 음……. 그, 그건 그렇지만…….”

 

“마음 같아서는 약이고 뭐고 당신을 방치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이 당신을 책임지라고 했으니, 약을 지급해 드리는 거예요. 그러니 군소리 말고 300만원 마련하세요. 지금 당장!”

 

“아,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현석은 체념한 채 휴대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응. 나야. 급한 일이 생겨서 300만원을 마련해야겠어. 지금 당장 은행 계좌로 돈 넣어줄 수 있겠어? 무슨 일이냐고? 큰 일이 아니니 걱정 말고 돈 넣어줘. 알았지? 사랑해, 여보~.”

 

통화를 마친 뒤, 그는 전화를 끊고 민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내가 돈을 보내주겠다는군요. 이유를 꼭 설명하라는데, 어찌할까요?”

 

민정은 냉소적으로 답했다.

 

“알아서 대답하세요. 설마 사실대로 말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겠죠?”

 

“다, 당연히 아니죠!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지요.”

 

“좋아요. 그리고…….”

 

민정은 현석의 귓가에 입을 갖다대고 속삭였다.

 

“이제부터 반드시 모든 일을 저와 상담하고 결정하세요. 안 그러면 다시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겠어요. 알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잘 듣고 마음에 깊이 새기세요.”

 

민정은 두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절대로 우리를 벗어날 수 없어요. 당신은 우리와 한 배를 탔으니까요. 만약 쓸데 없는 짓을 한다면, 당신은 파멸당할 거예요. 그러니 다른 생각 말고, 시키는 대로 하세요.”

 

현석은 공포에 질려 몸을 덜덜 떨며 화답했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 독단적으로 일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이리하여 현석은 민정으로부터 해독제를 전달받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후 그에게 또다른 위기가 찾아오니, 바로 그를 수상하게 여긴 추적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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