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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

제26화 빛을 삼킨 아귀들(2)

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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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간(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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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황의 술을 몰래 마시다 들켜 혼이 나고 있는 은류와 백록과 홍희의 머리 위에는 자신들이 마신 술의 양만큼을 측정하듯 항아리가 올려져 있었다.

 은류는 한 개, 홍희는 두 개, 제일 많이 마신 백록의 머리에는 네 개가 올려져 있었다.

 심지어 그냥 올려놓고 있는 것이 아닌 기마자세를 하고 서서 전날 아침부터 다음 날인 지금 새벽녘까지 계속 기마자세로 서있었다. 

 머리에 제일 많이 항아리를 올려놓고 있는 백록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으...”

 그를 시작으로 홍희도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렸다.

 “아아아..., 죽을 거 같아....”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버티며 아무 소리도 없는 은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뜻밖에도 매우 평온하게 벌을 받고 있었다.

 백록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야, 너 왜 이렇게 편해 보이냐?” 

 “....”

 홍희도 물었다.

 “혹시 기절한 건 아니지?”

 바로 옆에 있었기에 손으로 얼굴 앞을 휘휘 저어 보았다.  

 출렁.

 “어맛!”

 하마터면 항아리가 옆으로 쏟아질 뻔했다. 

 은류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표정을 짓고 입을 열었다.

 “에휴~, 그만할래.”

 “뭐?”

 홍희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지며 그의 행동을 말렸다.

 “왜 갑자기 그래? 조금만 버티면 되잖아?”

 “난 이렇게 비생산적인 활동이 싫어!”

 “수련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니들처럼 무식하게 체력 바보들이나 이런 걸 수련으로 생각하지. 난 아니다.”

 은류는 양손으로 항아리를 잡아 밑으로 내려놓았다. 

 백록이 그를 바라보고 피식하고 웃었다.

 “후폭풍이 두렵지 않나 보지?”

 “별로~ 나랑 같이 안 갈래? 어차피 이거 외에도 더 있을 거 같은데?”

 “야, 내가 옛날에 너처럼 반항 안 해봤겠냐? 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짬이 있으니까 이렇게 있는 거지.”

 “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냥 이대로 있다가 스승님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

 “하아~, 내가 이거까지는 안 쓸라 했는데.....”

 홍희가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머리 좋은 은류라면 분명 좋은 수가 있을 것이다. 백록도 은근 기대하는 눈치였다.

 “뭔데, 좋은 수가?”

 “이 이상 날 자극하면.....”

 두 사람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엄마한테 이를 거야.”

 “뭐?”

 “엥?”

 은류는 시간의 구슬을 만들어 자신의 몸을 회복하고 곧장 무황의 집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홍희가 황급히 말렸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데, 은류야?!”

 옆에 있는 백록이 그녀를 말렸다.

 “그만해.”

 그를 보니 표정이 분해하듯 미간이 좁혀져 있었다.

 “왜 그래요, 은류 엄마가 그렇게 대단한 분이에요? 저번에 뵀을 때는 전혀 아니었는데?”

 “웅녀님을 몰라?”

 “네....”
 “무신님이시다. 저 녀석 어머님.”

 “아...”

 “든든한 뒷배 있어서 좋겠다, 젠장.”
 홍희는 그의 어머니가 천상도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바로 그 ‘무신’이라는 분이자 왠지 그의 뒷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근데 왜 은류는 몸 쓰는 걸 엄청 싫어할까요?”

 “녀석한테 듣기로는 쌍둥이 여동생한테 재능이 다 갔다는데?” 

 “아, 맞다. 동생도 있었지 참....”

 그의 동생이 어떤 아이일지 몹시 궁금해졌다.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며 두 사람은 계속 벌을 받았다. 
 
 은류는 스스로의 힘으로 무거운 대문을 열었다. 

 끼이익!

 드디어 혼자서도 어느 정도 열 수 있게 되었고, 은류는 좀만 더하면 저 지긋지긋한 곳도 해방이라며 속으로 기뻐했다. 

 “아~, 막상 나오긴 했는데.... 어디에 숨어 있어야 하지?”

 인간도에서 학교를 다닐 때도 땡땡이는 안 쳐본 그라서 어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입에 곰방대를 물며 한산한 거리를 바라보는데 근처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보여 그들이 하는 말을 엿듣듯 주의 깊게 관찰했다.  

 “난 잇다가 어머니랑 아버지랑 해림산으로 꽃구경 갈 거다~.”

 “정말? 나도 가고 싶다.”

 “같이 갈래?”

 그러고 보니 봄이 지나 벚꽃은 아니어도 초여름이라 필만한 꽃이 있겠다 싶어 은류도 꽃구경이나 갈까 하고 생각했다. 

 곰방대를 뻐끔거리며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은류는 워프 게이트를 열어 해림산으로 갔다. 

 눈뜨면 코 닿듯 역시 워프 게이트를 열어 이동하니 전용기 있는 사람 부럽지 않을 만큼 빠르게 도착했다. 

 “오~.”

 한눈에 내려다보려고 고산지대를 생각하고 좌표를 맞춰서 이동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은류는 세상에 모든 꽃들을 내려다보는 착각을 느낄 만큼 절경이 펼쳐져 있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천상도는 천상도구나!”

 저번에 왔을 때는 밤이고 겨울이라 수풀 말고는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오늘은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엄청 아름다웠다.

 흠이 있다면 저번에 애환이 태운 숲 지대가 마치 지옥으로 통하는 문처럼 검게 물들어 있어 아쉬웠다. 

 “후우~, 애환 녀석...”

 연기를 내뱉고 이런 절경은 꼭 보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고쳐줄까나?”

 재를 털고 워프 게이트를 만들어 눈에 보이는 검게 탄 지점으로 이동했다.
 
 “와~, 그대로 보존돼있네?”

 애환과 무황의 싸움을 상기시켜주듯 나무나 풀 심지어 밟고 서 있는 모래까지도 검게 그을려 있었다. 

 “흐음~.”

 무황의 발차기와 주먹질에 몇 구의 나무들이 꺾여 있었고, 포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군데군데가 움푹 파여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대단했네....”  

 천상도로 와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많은 사선을 넘나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쟁이 곧 끝날 거라는 생각까지 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접전이 없으면 장기간 휴전에 돌입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다 끝났다고 고향감과 함께 추억에 젖듯 둘러보는 그의 귓가에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왜 오자고 한 거야?”

 “온 김에 잠깐 들르는 거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애환과 수영이 다정하게 팔짱까지 끼우고 걸어오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애환....?”

 은류는 자신도 모르게 근처 나무 뒤로 숨어 두 사람을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인간도에 있는 자신의 동생 무화가 떠올랐다.

 ‘바람피우는 거라면 넌 내 손에.....’

 애환과 수영은 팔짱을 풀고 자신들이 무황과 싸웠던 흔적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애환은 자신의 힘에 의해 불타 그을려진 나무에 손을 가져갔다.

 “아직 살아있는 건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딛고 서 있는 땅을 발로 비벼보았다.

 쓱, 쓱, 쓱....

 아무리 비벼도 검은 재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았다. 

 자신의 힘에 의해 숲이 이렇게 탔다는 죄책감이 밀려와 입안이 썼다.

 ‘다음부터는 조심히 다뤄야겠다....’

 자신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험한지 새삼 깨달았다. 이윽고 애환은 수영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웃었다가 슬펐다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두근, 두근!

 “?!”

 이제 수영의 표정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내가 미쳤나? 왜, 왜 이러지?’ 

 애환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수영에게 걸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 하고 있어?”

 “그냥.... 아무 생각이나?”

 “너 표정은 그렇게 말 안 하는데?”

 “내 표정이 왜?”

 수영은 앞머리 칼이 애환의 손에 눌린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앞으로는 그런 표정 짓지 마.”

 “풋, 내가 무슨 표정을 짓든 무슨 상관이래?”

 “그냥 짓지 마.”

 “왜?”

 “왠지 신경 쓰여....”

 수영은 몸을 일으켜 세워 그를 바라보았다. 애환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시선이 교차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조금은 눈치챘고, 용기를 내어 입을 열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은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언제부터 저런 사이가 된 거지?”

 은류는 두 사람의 감정을 눈치채고 최대한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무화는 어쩔 거야, 애환?!’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해보려고 해도 도저히 포장이 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무화를 두고 바람을 피운 천하의 나쁜 새끼라고 밖에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곰방대에 불을 지펴 깊게 빨았다. 

 “저, 저기 수, 수영아....”

 “응?”

 애환이 수영에게 마음을 전하려는 찰나의 순간 은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짜증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아~, 진짜! 짜증 나서 못 봐주겠네!”

 “?!”

 화들짝 놀라 애환과 수영이 은류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으, 은류....”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은류는 짜증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수풀에서 걸어 나와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처음부터 와 있었다.”

 은류는 애환의 앞으로 다가가 서서 뒤통수를 신경질적으로 긁다가 다짜고짜 주먹을 쥐고 그의 뺨을 퍽 소리 나게 후려쳤다.

 “뭐 하는 짓이냐?!”

 옆에 있던 수영이 날을 세우며 물었다. 

 “멈춰라. 너도 잘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뭐?!”

 은류는 시간의 구슬을 만듦과 동시에 적의까지 드러냈다.

 애환은 맞은 뺨을 손등으로 훔치고 일어나 은류에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 짓인데?”

 “갑자기? 하, 네가 잘못한 건 생각 안 하냐?” 

 “내가 뭘?”

 “하아~, 내 친구 애환이 내 여동생을 가지고 놀 만큼의 쓰레기는 아닌 줄 알았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알아듣기 쉽게 말해!”

 “정말 궁금해?”

 두 사람은 서로 적의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듯 바라보았다.

 이런 두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수영은 자신의 목에 걸고 있는 돌을 꽉 움켜쥐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거지?’

 자신의 잘못을 먼저 깨달은 수영은 깊이 반성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갑자기 커져 버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기도 했다.

 애환은 은류의 얼굴을 보고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무화의 얼굴이 겹쳐 보이자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혹시 내가...”

 “닥쳐!”

 은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애환을 한 대 후려치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가며 입을 열었다.

 “딱, 한 번만 눈감아준다. 두 번 다시는 내 눈에 너희 두 사람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이 보이면 나도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니까 그런 줄 알아.”

 “은류, 난.....”

 “적어도! 무화에게 먼저 얘기하고 나한테 지금 할 말을 해. 안 그러면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나도 모른다고 경고했으니까.”

 “.....”

 은류는 곧바로 워프 게이트를 열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단둘이 남게 된 애환과 수영은 서로 시선도 못 마주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솨아아아.

 바람이 불었고, 기다리다 지치듯 수영이 먼저 워프 게이트를 열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먼저 갈게....”

 “....”

 홀로 남은 애환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무화와 자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난..... 무화와.....”

 누가 보지도 듣지도 않고 있는데 도저히 미안해서 다음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곧바로 머릿속에서 지우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
 집으로 돌아온 수영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남모르게 지켜본 이가 있었다. 

 “수영아....”

 다름 아닌 검황이었다.

 그는 애환과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음을 확신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고 싶었으나 연정이라는 것이 타인이 개입한들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못 본 척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시련이 얼마나 아픈지 잘 안다, 수영아...”

 애들 사랑에 끼어들지 않기로 천녀와 함께 약속했기에 검황은 하나뿐인 딸을 울린 애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한편 무황의 자택으로 돌아온 은류는 시간을 조종해 자신의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대문을 부수듯 활짝 열고 들어왔다.

 쾅!

 아직도 벌을 받고 있던 홍희와 백록이 화들짝 놀라 머리에 얹고 있는 항아리를 떨어뜨렸다.

 챙그랑! 콰아앙!

 그들을 감시하듯 서 있는 무황이 갑자기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 시선을 옮겼다.

 “음....”

 백록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무황의 귓가에 속삭이듯 물었다.

 “밖에서 무슨 일 있었을까요?”

 무황은 짚고 있는 지팡이로 그의 이마를 빡 소리 나게 때리고 은류에게 걸어갔다.

 은류는 주최되지 않는 화를 억누르지 않고 무분별하게 방출하며 다가오는 무황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대련을 신청했다.

 “한 수 배우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너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원 없이 상대해 주마.”

 “감사합니다.”

 
 #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자 서북에 있는 천상도의 사자들은 점점 경계가 느슨해졌다. 

 궁신은 경계를 서는 사자들과 유사시에 대비할 수 있는 병력만 남기고, 사자들을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으로 모두 돌려보내고 있었다.

 그들을 격려해 줄 겸 성벽에서 내려와 한적한 곳에서 모두에게 악수를 건네고 있었다.

 “진심으로 고마웠네.”

 “언제든지 불러만 주십시오, 궁신님!”

 “하하, 알았네. 돌아가서 수련이나 게을리하지 말게.”

 “네!”

 악수를 받은 이들은 모두가 돌아갔고, 거의 다 보낼 때쯤이 되자 갑자기 예기치 못 한 일이 일어났다.

 성벽 위에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뿌우우우웅!

 “?!”

 모두가 화들짝 놀랐고, 궁신은 황급히 성벽 위로 올라가 매처럼 멀리 내다보듯 빠르게 수색을 시작했다. 

 “.....”

 개미 새끼 한 마리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팔을 부른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찰나의 순간!

 그녀의 시야에 아귀도로 통하는 문에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궁신은 자신의 사자의 무기를 소환해 남아 있는 전군에게 알리듯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전군 전투 준비!”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려...’

 근 몇 주간 평화에 너무 안주해 있어서일까 아니면 다시금 혈투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일까?

 모두의 움직임이 최근에 치렀던 전투 때 하고는 황연히 차이가 보일 만큼 움직임이 둔한 것이 느껴졌다.

 궁신은 미간을 좁히며 사기라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저 멀리 있는 아귀도의 문을 겨냥해 활시위를 힘차게 잡아당겼다.

 탕!

 화살이 나감과 동시에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궁신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화살은 힘차게 날아가 아귀들이 바퀴벌레 떼처럼 나오는 문에 정확하게 적중했다.

 화아아악!

 빛이 폭발하듯 발산돼 수만의 아귀들이 나오고 있는 문을 일순간에 덮쳤다.  

 “뭐지?”

 두 눈에 영을 주입해 자세히 보니 폭발이 일어난 순간에 흡수가 되듯 빠르게 먹어치우는 아귀 한 마리가 보였다.

 “저 녀석은....”

 궁신의 영을 먹어치우고 있는 아귀는 다른 아귀들과는 외형부터가 달랐다.

 아기의 얼굴과 가는 목, 복수가 찬 것처럼 볼록 튀어나와 있는 배와 가느다란 팔다리를 가진 아귀들과는 달리 궁신의 영을 먹어치운 아귀는 몸짓부터 남달랐다.

 온몸이 살덩이 그 자체였다. 

 아귀는 폭식을 하고 싶어도 가느다란 목 때문에 음식을 먹어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다 토하기에 항상 굶주려 있다. 

 저렇게 살이 뒤룩뒤룩 쪄있는 아귀는 궁신이 알기로는 딱 한 마리뿐이다.

 “드디어 수문장들도 움직이는 건가?!”

 그간 예환이 사라지고부터는 운 좋게 그들이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았었다. 

 궁신은 필살의 각오를 다지고 모두에게 일렀다.

 “전원 죽을 각오로 아귀도의 수문장을 막는다!”

 자신들이 뚫리면 성결까지 바로 직행임을 잘 알고 있는 천상도의 사자들은 모두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성결에 아귀들이 쳐들어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전에 성벽이 뚫리고, 궁신과 몇몇을 제외한 모두가 아귀들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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