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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르르르륵! 철컹!

하므성의 성문은 두터운 강철로 만들어졌다. 거대한 성문이 열릴 때면 웅장한 쇳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물론 인간의 힘으로는 개폐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반드시 동력석의 힘이 필요하다.

병사들은 성문이 열리기 전부터 도열을 마친 후에 추격대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대장님, 다녀오셨습니까?”

환은 경비대 복장을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경비대는 환을 쉽게 알아봤다. 그만큼 환의 얼굴이 익숙한 탓이다. 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인사를 주고받기에는 그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보였다.

얼마 전, 환은 경비대장임에도 불구하고 살인마 잭을 잡기 위해 성 밖으로 나섰다. 살인마가 성 밖으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잭이 성 밖으로 도망친 이상, 그가 성 안으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 살인마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이대로 영영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친 채, 평생 경비대장의 위치에 만족하며 살아갈 환이 아니다. 환의 야욕은 끝이 없었다. 보다 나은 직책과 명성을 얻으려면 성 밖으로 뛰쳐나가야만 했다. 그곳에서라도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반드시 좋은 성과를 보여야만 했다. 그런데 또다시 기회를 놓쳤으니 자신의 무능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심기가 불편했던 이유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환은 경비대 복장으로 갈아입은 후에 왕실로 향했다.

왕실 입구에 다다르자 하므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놓쳤단 말이냐?”

“소, 송구스럽습니다.”

“마지막까지 잭과 대면한 자가 누구더냐?”

가슴이 떨렸다. 아니,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살인마 잭을 마지막으로 마주한 자는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하므왕이 환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발이 움직이질 않는다. 망설여진다. 하므왕과 대면하는 것이 두려웠다. 왕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잠시 후, 환의 망설임과는 상관없이 왕실 안에서 대화가 이어졌다. 추격대장 딘의 목소리다.

“겨, 경비대의 환입니다.”

“환? 경비대장 말이더냐? 경비대장이 왜 성 밖으로 나갔단 말이냐?”

딘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변명거리를 찾은 듯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살인마 잭은 전투실력이 매우 뛰어나서 보통의 사병들로는 그를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특별히 경비대장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살인마를 쫓던 우리 모두가 전멸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므왕은 이미 추격대장이 경비대장과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친구의 도움이 필요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경비대다. 경비대로써의 임무가 있었다. 그 책임까지 져버려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왕에게 미리 그 사실을 알려야만 했다.

“여봐라, 가서 경비대장을 불러 오거라.”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환은 심호흡을 길게 뱉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알현실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친구를 위해서라도. 추격대장 딘은 죄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성 밖으로 나가려는 자신을 말렸던 것이다. 친구의 충고를 무시한 채 성 밖으로 나간 것은 환의 결정에 따른 행동이었다. 스스로 저지른 잘못이다. 이제는 친구가 곤란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자신이 나설 차례다. 환은 알현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비대장 환, 하므왕께 인사 올립니다.”

하므왕은 때마침 나타난 환을 바라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나타났군. 이리 오너라.”

환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왕에게 다가갔다.

“네가 살인마 잭과 끝까지 혈전을 벌였다지?”

“그렇습니다.”

“경비대장인 네가 왜 추격대를 따라갔느냐?”

환은 왕의 물음에 즉각 답변하지 못했다. 왕이 알고 있는 사실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이, 하므왕의 말이 이어졌다.

“보고받은 바로는, 추격대장이 너에게 지원을 요청했다더군. 그리고 네놈은 나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마저 미뤄둔 채 딘을 도우러 갔다. 내 말이 틀린가?”

환은 이내 결심한 듯 왕을 바라보고 떨리는 입술을 움직였다.

“틀립니다. 딘은 잘못이 없습니다. 모든 잘못은 저에게 있습니다.”

하므왕은 환의 답변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늘 두 사람을 지켜봐 왔기에 이들의 우정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둘 중에 어느 한 사람이 난처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것도, 둘 사이에 얽힌 사연과 비밀이 크다는 것도.

“상세히 말해 보거라.”

“악명이 높은 살인마 잭을 제 손으로 직접 잡고 싶은 마음에 제가 추격대로 몰래 숨어들어간 것입니다.”

옆에 있던 딘은 그의 자백에 놀란 표정으로 모든 것을 단념한 채 머리를 숙였지만, 하므왕은 환에게서 눈을 때지 않았다. 환의 모습이 실로 당당해보였다. 환은 왕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친구인 딘조차도 추격상황에서 저를 알아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하므왕은 이들을 벌하는 것이 자신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타격을 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하므성의 병사들에게 늘 존경받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하므왕이 두 사람을 처벌한다면 병사들은 오히려 하므왕의 자비심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처벌은 하지 않되, 왕의 덕망과 권위를 세워 두 사람이 왕에게 충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잠시 고민하던 하므왕은 곧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놈들이 나를 참 곤란하게 하는구나. 너희를 벌하는 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므왕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가라앉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선명해졌다.

“환, 네놈은 살인마 잭을 거의 잡았다가 놓쳤다고 들었다. 내 말이 맞는가?”

“네, 그렇습니다.”

“일반 병사는 그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농락을 당했다지?”

“그렇습니다.”

맞다. 농락을 당했다는 표현이 옳다.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에 그만큼 어울리는 말도 없다. 살인마 잭은 도망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았고, 오히려 추격대를 노려 한 명씩, 한 명씩 목숨을 빼앗았다. 10여 명의 추격대가 단 한 명에게 농락을 당한 것이다.

그때, 하므왕의 입에서는 뜻밖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가 저지른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줄까하는데……. 너희가 놓친 살인마 잭을 잡아오도록 정식으로 허락해주마.”

“네?”

환과 딘은 고개를 들었다.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그러나 하므왕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왜, 자신이 없느냐?”

두 사람은 왕의 질문에 즉각 대답했다.

“왕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래, 좋다.”

하므왕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입구에 있는 병사를 향해 말했다.

“그것을 가져오너라!”

병사는 왕의 명령을 받고 예를 취한 후에 알현실 밖으로 나갔다. 징계를 받을 줄로만 알았던 환과 딘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 사이, 왕실을 나갔던 병사가 무언가를 양손에 들고 나타났다.

“경비대장은 이리 오거라.”

환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왕에게 다가갔다. 하므왕은 병사가 가져온 물건을 두 손으로 들어 환에게 하사했다.

“이것은 허리띠가 아닙니까?”

허리띠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하므왕이 공손하게 두 손으로 들 만큼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허리띠를 바라보는 하므왕의 눈은 사뭇 진지하기만 했다. 마치 대단한 보물이라도 바라보는 눈빛이다.

“이 허리띠에는 이름이 있지.”

“이름이라고요? 그렇다면…….”

“그래, 이 허리띠의 이름은 ‘역대’. 즉, ‘바이블’이다.”

환은 두 손이 떨리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로인해 두 손에 들린 허리띠 역시 몸을 떨었다.

바이블. 그것은 대략 500여년 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구와 검은 태양의 ‘대충돌’이 있던 당시, 전지전능한 신은 대충돌로 인해 힘들어하던 인류에게 바이블을 주었다. 인류는 그를 ‘야훼’라고 불렀으며 바이블을 곧 희망의 상징으로 삼았다. 각각의 보물마다 신의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능력이 제각각 달라 세상의 그 어떤 보물보다 귀하게 여겨졌다. 그 귀한 보물을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손으로 직접 들고 있었다. 환은 바이블을 손에 든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 바이블을 어째서 제게…….”

환은 하므왕에게 물었다.

하므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강렬한 눈빛으로 환을 바라봤다.

“너희는 반드시 살인마 잭을 사로잡아야 한다. 그래서 이 귀한 바이블을 맡기는 것이야.”

환은 역대를 바라봤다. 하므왕의 위엄이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임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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